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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최저가격 보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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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최저가격 보상제

입력
2007.07.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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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형할인점의 대명사인 이마트는 1997년 봄 파격적으로 ‘최저가격보상제’ 를 도입했다. 자사 상품보다 싸게 파는 다른 할인점이 있으면, 점포에 따라 많게는 차액의 2배를 보상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고객이 이마트에서 가전제품을 100만원에 샀는데, 롯데마트나 홈플러스 등 경쟁업체에서 90만원에 파는 것을 발견했다면 20만원까지 되돌려 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마트의 깜짝카드를 반기면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의외의 성공을 거뒀고, 경쟁업체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 이마트가 적잖은 출혈을 감수하면서도 이 카드를 내민 바탕에는 선두업체의 시장 지배력과 게임이론에 근거한 자신감이 있었다. 자사 점포에서 200만원 하는 냉장고를 경쟁업체는 180만원에 판다면, 2배 보상의 경우 40만원을 돌려줘야 하니 부담이 크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선 차액 이상의 돈을 환급 받으니 이마트에서 상품을 사는 것이 이익이다. 경쟁업체가 물건을 싸게 팔아도 손님은 오히려 줄어드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다른 할인점도 이마트의 전략을 베끼는 게 최선의 선택이고, 이로써 ‘암묵적 담합(tacit collusion)’이 이뤄졌다.

▦ 이 균형은 2002년 이마트가 새로 ‘최저가격 신고보상제’를 내놓음으로써 깨어졌다. 물건을 산 사람에게 차액을 보상해 주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른 할인점보다 더 비싸다는 것을 신고만 하면 5,000원짜리 상품권을 지급하는 제도였다. 또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한 롯데마트는 한술 더 떠 ‘최저가격 10배 신고보상제’를 도입했다.

그럼 손님들이 몰려갔을까. 줄을 선 것은 맞는데, 대부분 신고만으로 10배의 보상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었다. 달라진 게임구도 앞에 롯데마트가 먼저 손을 들었고, 이마트도 슬그머니 ‘신고’부분은 철회했다.

▦ 이마트가 10년 동안 실시해온 ‘최저가격 보상제’를 폐지한다고 엊그제 밝혔다. “실질적으로 상시 최저가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한 만큼 이젠 상품을 차별화하고 질을 높이는 일에 주력”하기 위해서란다. 끊임없는 저가경쟁이 협력ㆍ납품업체를 쥐어짜고, ‘가파라치(가격+파파라치)’만 활개치게 만들었다는 반성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보상금 14억원 중 12억원을 얌체족이 받아갔다. 지금은 고가제품이 아니면 대부분의 보상이 5,000원짜리 상품권 1장에 그쳐 제도 폐지가 억울할 것은 없으나, 그래서 무엇이 좋아지는지 따져볼 일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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