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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조선형사 홍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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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조선형사 홍윤식'

입력
2007.07.1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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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관람 비율에서 뮤지컬의 객석점유율이 90%에 육박했다는 소문이다. 공연문화의 소비와 유통이 획일화 돼가고 있다는 증거다. 노래와 스펙터클이 일상의 저속성과 피상성을 확실히 보상해줄 거라는 대중의 환상 때문일까. 그렇다면 소극장에서 그 어떤 물량공세도 없이 올라가는 ‘언어극’은 어떻게 관객을 극장까지 유인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보상을 약속할 수 있을까?

<조선형사 홍윤식> (성기웅 작ㆍ김재엽 연출)은 대중적 장르인 ‘탐정물’로 유인해 ‘인문학적 성찰’로 관객을 이끌고 있다. 소재로만 보자면 지금의 충정로에서 일어난 ‘죽첨정 단두유아사건’으로 엽기성 그 자체다. 탐정물의 역사가 그러하듯 익명성이 생겨나고 밀실의 삶이 시작되는 근대 도시, 1933년 경성의 시공간이 그 배경이다.

일본에서 근대적 수사기법을 익힌 홍윤식이 서대문경찰서 사법계에 부임해 온다. 그가 맡은 첫 사건이 유아의 머리통 절단사건. 간질이나 등창에 아이 머리골이 좋다는 속신(俗信)에서 비롯된 전근대적 사건을 좇는다. 연극은 ‘명탐정 호움즈’에 경도돼 ‘왓슨’을 자임하는 여사환 손말희의 내레이션에 의지한다. ‘하였에요’로 요약되는 ‘아녀자의 말하기’ 전략은 주효해, 사건은 담박하고 아기자기하게 재현된다.

우리 일상의 삶의 기원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근대의 입구는 근본적으로 성찰의 공간이지만 ‘모단’의 풍물지격 접근으로 자칫 웃음이 우세할 수 있다. 그러나 비교적 과장된 촌극을 남발하지 않고, 세 명의 코러스를 운용해 근대적 시공간에서 일어날 법한 구체적 반응들을 유희적 연극성으로 꾸려낸다든가 서로 다른 공간을 병치하고 사건을 동시 발생시키는 연출력이 매끄럽다.

탐정물의 구조는 헐겁고, 장르적 관습도 해체하는 쪽에 가깝지만 연극의 전통과 계보를 영민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현실과 초현실의 시공간이 함께 공존한다는 면에서 오태석의 <자전거> , ‘진실은 알 수 없다’는 주제 면에서 김광림의 <날 보러 와요> 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알 수 없음’을 표방하지만 근대와 전근대 탈근대를 오가는 해석 틀을 제공하고, 학문적 욕구라 할 수 있는 ‘의미의 통일성’으로 관객을 이끈다는 점에서 매우 인문학적 연극임에는 틀림없다.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에서 9월2일까지 공연한다.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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