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던 인수ㆍ합병(M&A) 시장이 돌연 냉각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불붙은 주식시장 때문이다.
M&A대상으로 여겨졌던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 인수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면서 M&A 성사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고 있는 상황. 적대적 M&A 공격 앞에 밤잠을 설치던 기업들은 한 숨을 돌리게 됐지만, M&A를 통해 사업확장을 준비해온 기업들은 경영전략수정 등 전전긍긍하고 있다.
포스코는 주가상승이 가장 반가운 기업 중 하나다. 지난해 세계 1위 철강사인 미탈이 2위인 아르셀로를 M&A, 아르셀로-미탈이란 거대 철강사로 거듭난 뒤 포스코는 늘 적대적 기업사냥 위험에 노출돼왔다.
사실 아시아 시장 진출을 노리는 아르셀로-미탈에겐 포스코와 신일본제철이 가장 매력적인 먹잇감이었다. 특히 올해초만 해도 포스코의 시가 총액은 300억달러 수준에 불과, 신일본제철과 100억달러 이상 차이 나며 M&A 1순위로 점쳐졌다.
그러나 이후 포스코 주가는 꾸준히 상승, 최근 시가 총액은 520억달러까지 뛰어 넘은 상태. 신일본제철의 시가총액(470억달러)까지 추월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지금 포스코를 M&A 한다면 프리미엄까지 감안, 500억달러 이상이 들 것"이라며 M&A 가능성을 일축했다. M&A걱정에 밤잠을 못잔다던 이구택 회장도 요즘은 한숨 돌린 표정이다.
주가급등은 워크아웃 기업들의 매각일정에도 큰 차질을 초래하고 있다. 올해 M&A 시장의 최대 매물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16일 시가 총액은 11조2,537억원을 기록했다.
결국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가 보유한 50.34%의 지분에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을 경우 대우조선해양 인수비용으론 8조~9조원이 필요하다는 게 증권가 분석이다.
지난해까지도 대우조선해양의 인수 대금은 1조원이 조금 넘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었으나 조선업의 대호황에 주가상승까지 겹쳐 이젠 10배 가까운 자금이 필요한 셈이다.
때문에 포스코 GS 두산 동국제강 LS 한진중공업 등 대우조선해양의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기업들은 하나같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인수후보으로 거론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이 정도 돈을 지불할 기업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진행될 경우 중국에서 10조원 이상을 써 낼 것이라는 괴담마저 돌고있어 M&A 시장을 더욱 흉흉하게 하고 있다.
현대건설도 최근 주가가 오르며 매각 대금 7조~8조원설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연초 5만원대였던 현대건설 주가는 13일 장 중 한 때 8만200원(52주최고가)까지 치솟았다. 워크아웃을 벗어나 새 주인영입을 기다리는 하이닉스, 쌍용건설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때문에 국내 M&A를 포기하고 해외로 눈을 돌리고 기업도 있다. A그룹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경우 채권단이 매각 일정마저 제시하지 않고 있는데다 최근 주가 상승으로 설혹 M&A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M&A 비용을 상쇄할 만한 수익성을 담보하기 힘들다고 판단, 더 이상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며 "대신 해외 기업 M&A를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주가급등 전 미리 M&A를 성사시킨 기업들은 희희낙락이다. 지난해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요즘 표정 관리가 힘들다. 지난해 6조4,000억원이란 사상 최대 매각 대금을 주고 대우건설을 인수할 땐 출혈인수 논란마저 일었지만, 최근 주가가 오르며 재계에선 오히려 박삼구 회장의 선견지명을 부러워할 정도이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최근 주가가 올라 지난해 인수 당시 컨소시엄에 참가한 재무적 투자자들까지 만족하고 있다"며 "대우빌딩 매각이 원활하게 이뤄진 것도 주가 상승 덕이 크다"고 밝혔다.
한편 이 같은 매각가격급등이 M&A일정을 앞당길 것이란 시각도 있다. 어차피 워크아웃 기업들을 팔아야만 하는 채권단의 경우 주식 시장이 좋을 때 제값을 받기 위해 매각 일정을 앞 당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