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치과의사가 원고지 1,400매 분량의 두툼한 정치 소설을 내놨다. 서울 성동구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오세민(44)씨가 그 주인공이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낡은 만년필로 7년 간 틈틈이 대학노트에 써내려간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했고, 이것이 <드보르작 프로젝트> (화남 발행)란 제목의 두 권짜리 책으로 묶였다. 드보르작>
서홍관, 나해철 시인 등 의사로 활동하는 문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력이 많이 드는 소설을 쓴 경우는 드물다. 오씨는 그 비결을 “술, 담배를 안하는 심심한 생활 습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업무 후 귀가해 세 자녀의 공부를 돌봐준 뒤 자정 쯤부터 집필을 하는 규칙적 일과가 대작(大作)의 터전이 됐다.
‘드보르작 프로젝트’는 남북한 정치 세력이 공동 개발한 위성형 무기를 뜻한다. 가공할 만한 위력의 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치열한 암투가 소설의 중심 내용을 이룬다. 등장인물의 면면이 낯설지 않다.
장기집권을 꾀하며 정적을 탄압하던 대통령, 그를 암살하고 쿠데타 정권을 수립하는 정치인, 그런 아버지 밑에서 득세하는 ‘소통령’ 등에게선 한국 현대정치사를 쥐락펴락했던 인물들의 모습이 비친다.
작품엔 암살, 납치, 고문, 기억 말소, 강제 성형 등 정적에게 가하는 테러가 난무한다. 여기엔 국가를 “신뢰 못할 폭력 기구”로 여기는 오씨의 생각이 담겼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82년 서울대 치대에 입학하면서 “성장기에 보고 들은 군사정권 시절의 국가 폭력에 대해 깊은 증오심을 품게 됐다”며 그는 ‘386세대’의 보편적 정서를 드러냈다.
시드니 셀던, 프레드릭 포사이드 등 일급 스릴러 작가 애독자답게 오씨는 플롯에 특히 공을 들였다. 원고를 검토했던 소설가 김영현씨가 “퍼즐을 짜듯 치밀한 구성과 박진감 넘치는 문체가 돋보인다”고 상찬할 정도다.
왜 장편 문학상에 응모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런게 있는 줄 몰랐다”고 답할 만큼 문단 사정에 무심하지만 “소설은 무엇보다 재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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