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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내고향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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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내고향 진안

입력
2007.07.1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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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전북 진안이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갈라지며 형성된 고원지대에서 불끈 힘을 준 것처럼 두 봉우리로 우뚝 솟은 마이산 아래 작은 마을이다.

오지의 대명사였던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 지역의 한 귀퉁이인 이곳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눈이 조금만 와도 고립됐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부모님과 함께 전주로 나가 살았지만 방학만 되면 그곳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가,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개학 코앞에 돌아오곤 했다.

커다란 독에 나무판을 걸쳐놓은 뒷간이 무서웠고, 밤만 되면 마땅한 놀이가 없어 무료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고추밭을 매러 가는 어른들을 따라 가서 그늘에 앉아 '라면땅'을 먹었던 일, 산이 떠나가라 울어 대는 매미 합창을 들으며 방죽에서 헤엄치고 놀았던 일, 한겨울 얼어붙은 둠벙을 파헤치고 미꾸라지를 잡았던 기억은 아름다운 동화처럼 가슴 깊이 남아 있다.

지금도 친척 어른들이 거기서 농사를 짓고, 어머니 산소도 있어 가끔 가보지만 그 풍경은 예전과 크게 다르다. 한없이 넓어보이던 방죽이 지금은 아담한 연못처럼 보이고, 아득하게 높던 감나무도 왜소하게 보이는 건 단지 내가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저기 개발바람이 불면서 강산을 메우고 파헤쳤으니 그때의 감흥이 살아날 리가 없다. "도깨비가 나온다"며 밤이면 동네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던 공동묘지 자리에는 모텔이 들어섰다. 운치 넘치는 계단식 다랑이논은 예술관광단지로 조성되다가 분양이 되지 않아 몇 년째 코스모스밭으로 방치돼 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고향은 명절 때나 잠시 들르는 곳이 돼버렸다. 지금까지 여름휴가를 진안으로 가본 적이 한번도 없다. 굳이 휴가까지 그곳으로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한더위에 친지들 고생시킬까 봐 선뜻 나서지 못했다. 나와 같은 날 태어나 지금껏 고향을 지키고 있는 정동갑(正同甲) 친구가 여러 번 오라고 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피했다.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직장인 27%는 올 여름휴가지로 해외를 선택했다. 고향 친척집을 가겠다는 사람은 5%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지방 공무원들이 수십명씩 상경해 지하철 역에서 피서지 홍보물을 돌리고, 치약 칫솔 등 선물까지 나눠주고 있다고 한다. 최근 진안군도 '여름휴가 진안에서 보내기' 홍보물을 출향인사 5,000명에게 보냈다. 관광객을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들이려는 몸부림이다.

알고 보니 진안의 재정상황은 무척 열악했다. 재정자립도가 13%대 불과해 230개 기초단체 가운데 꼴찌를 다투고 있다. 1970년대 10만명에 육박하던 인구는 현재 3만 안팎으로 줄어들었고, 이마저 60세 이상 인구가 20%에 이른다고 하니 놀랍고 안타깝다.

실제로 남부럽지 않을 만큼 농사를 짓던 큰아버지는 대부분 농토가 수용돼 민박집을 운영하시고, 대대로 농사를 지어오던 외숙부는 대학 다니는 막둥이만 취직하면 도시로 나가실 생각이다.

사람과 돈이 모두 도시로 몰리면서 고향마을은 심리적 오지로 돌아가는 것 같다. 자식들 돌보느라 늙고, 아무도 챙기지 않는 사이 병들어 간 어머니처럼, 육신과 영혼을 살찌우고, 풍성한 추억을 안겨준 고향도 이렇게 잦아들고 있다. 올 여름에는 틈을 내서 마이산 탑사와 용담댐을 둘러보고, 고향 떠난 친구들을 불러 모아 계모임이라도 만들어야겠다.

최진환 사회부차장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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