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증권 서울 개포동 지점에 근무하는 이모(33) 대리는 이 달 13일 객장을 찾은 한 할머니 고객을 응대하느라 진땀을 뺐다. 주식투자가 처음이라는 이 70대 여성은 5,000만원이 든 가방을 내밀며 무턱대고 “앞으로 가장 많이 오를 주식을 사달라”고 졸랐다.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했지만, 그녀는 “요즘처럼 장이 좋을 때는 펀드를 들면 손해라더라”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이 대리가 마지못해 추천한 보험주와 조선주를 산 후에야 객장을 떠났다.
#2. 회사원 김모(34) 씨는 수개월째 점심시간마다 사무실에 남아 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일과 중에 상사들 눈치 보지 않고 주식 거래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주택마련을 위해 모아둔 돈과 증권사 신용융자를 합쳐 1억원 가까운 돈을 굴리고 있다는 김 씨는 “주식투자로 목표한 만큼의 수익률만 올리면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자영업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국이 주식투자 열풍에 휩싸였다. 올 초 이후 아찔한 고공비행을 이어온 종합주가지수(KOSPI)가 2,000고지까지 불과 37포인트만을 남겨두면서, 각 증권사 객장에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적금을 해약하거나,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 받은 돈을 들고 몰려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각종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5일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2004년 12월말 전체 펀드에서 4.57%(8조5,520억원)를 차지하던 주식형 펀드(주식편입 비율이 60% 이상인 펀드)의 비중은 11일 현재 25.94%(67조530억원)로 급증했다. 고객이 주식투자를 위해 맡겨놓은 고객 예탁금도 15조6,000억원에 달해 증시에 넘쳐 나는 실탄을 제공하고 있다.
■ 악재마저 삼켜버린 유동성 장세
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증시로 흘러들고 있는 돈은 주가를 빠르게 끌어올리며 전형적인 유동성 장세를 연출하고 있다. 주가가 금리인상, 기업실적 악화 등 악재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대신 순수하게 자금 수급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종합주가지수는 한국은행이 콜금리 인상을 발표한 12일에도 19.79포인트(1.05%)나 오른 데 이어, 다음날에는 국내증시의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저조한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53.18포인트(2.78%)나 급등했다.
증권가에서는 “원화 강세는 국가경쟁력이 강화됐다는 증거라서 호재이고, 유가 상승은 산업활동에 소요되는 기름 수요가 많아서 생긴 현상이므로 대형 호재이며, 중국증시 폭락은 중국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한국증시로 유입될 것이기 때문에 특급 호재”라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증시 상승속도가 워낙 가파르다 보니 주가가 증권사가 제시한 목표주가를 뛰어넘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 투자정보 제공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에 대해 증권사들이 제시한 목표주가는 평균 38만1,133원으로, 12일 종가 38만7,000원보다 5,800원 가량 낮았다. 삼성중공업도 증권사들의 목표주가가 4만6,071원으로, 12일 종가 5만5,600원의 80% 수준에 불과했다.
■ 아직은 팔 때가 아니다
하지만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단기급등 부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직은 주식을 팔 때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조정에 대한 두려움으로 상승장의 달콤함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증시가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시중자금이 빠른 속도로 증시로 유입되고 있어 추가상승 여력이 남아있다”며 “이미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서둘러 차익실현에 나서기보다는, 시장이 하락추세로 접어드는 것을 확인하고 매매를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증시 조정이 오더라도 그 기간과 폭이 크지 않을 전망이므로 우량주에 대한 저가매수의 기회로 삼으라는 의견도 있었다. 구희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하더라도, 주식을 사려는 자금 수요가 워낙 탄탄해 100포인트 안팎의 단기 조정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며 “증권, 보험주를 포함한 금융업종과 실적개선세가 뚜렷한 운송업종 등에 관심을 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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