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영변 핵 시설 가동중단으로 핵 시설 불능화 등 2단계 조치 협상과 이행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2ㆍ13합의에는 북측이 ‘모든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에 이어 모든 현존하는 핵 시설의 불능화’ 조치를 취하고, 5자 당사국은 ‘중유 95만톤 상당 가치의 경제적 지원’을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행 시기와 방법, 수준은 적시돼 있지 않다. 18일 수석대표회의로 재개될 6자회담이 남은 난제를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순서상으로 보면 핵 신고에 이어 불능화 조치가 취해지고,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핵 폐기 이행은 최종 단계에 속한다. 연내에 불능화까지 2단계 조치를 이행하고 핵 폐기를 내년 상반기까지 완료하자는 게 한미의 기본 구상이다.
연내 불능화의 경우 북측은 ‘조건만 맞는다면’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김명길 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AP와의 전화통화에서 “불능화를 위해서는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및 적성국교역법 적용 면제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측도 이런 ‘대가’에는 큰 이견이 없다.
김일성 전 주석의 유훈이라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즉 핵 폐기 문제 역시 큰 틀에선는 이견이 없다. 북측은 종전선언, 평화협상, 북미 수교로 이어지는 일련의 비핵화 상응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데 미국도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이번 가동중단 조치로 지난해 10월 핵실험 이후 취해진 국제적 제재와 고립을 완화할 수 있게 됐으며, 우리 측의 쌀 지원 등 부수적 이익도 챙겼다. 언제든 재가동할 수 있는 수준의 조치로 이 정도를 얻었다면 북측으로서는 밑질 게 없는 장사다.
문제는 북측이 향후 단계에서도 적절한 이득을 조건으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할지 여부다. 이번 조치가 핵 포기 결단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기만 전술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북측의 핵 포기 의지는 2단계의 첫 조치인 핵 신고의 수준에서 사실상 드러날 전망이다. 북측이 ‘국가의 최고이익’이라고 부르는 핵 기밀을 국제사회에 백일하에 드러낼 것이냐에 대한 회의론이 적지 않다. 따라서 영변 5㎿원자로 가동 이후 생산된 플루토늄 사용 내역과 핵무기의 보유량 신고 여부가 북측이 전략적 결단을 했는지 판단할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이 단계에서 경수로 제공이나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 한미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로 2단계 협상을 시작부터 교착시킬 가능성도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핵 신고 문제는 불능화보다는 더 어려운 협상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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