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서 주인공의 취미는 여자의 몸이라는 ‘신대륙’ 탐험이다. 참을>
탐험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몸은 그 주인의 내면이 깃든 집이자 그가 살아온 모든 흔적을 비장하고 있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가장 확실해 보이는 실체이면서 동시에 껍데기에 불과할 수도 있는 몸은, 현대미술이 즐겨 다루는 표현의 매체이자 대상이기도 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텍스트 인 바디스케이프(text in bodyscape)> 는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기억, 상처, 욕망, 고민을 신체 혹은 신체풍경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27명의 작가가 회화, 사진, 조각, 설치, 영상 등 여러 형태로 내놓은 80여 점의 작품을 흔적, 기억, 몸짓, 사유의 4개 주제로 나눠 전시 중이다. 텍스트>
인체 자체를 캔버스 삼아 완성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육체의 흔적을 옷이나 신발로 환기시키는 작품도 있다. 곽윤주의 사진 작품에서 웃옷을 벗고 거울 앞에 앉은 여자의 등에 난 칼자국 같은 상처는 뼈와 살과 가죽으로 지은 매끈한 천막을 군데군데 찢어놓은 듯하다.
김준은 벌거벗은 몸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문신을 그려넣어 사진을 찍었다.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위험한 유혹처럼 보이는 그 문신은 몸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김재옥이 그린 징그러울 정도로 거대한 인체도 불안하게 들끓는 욕망을 품고 있다.
공간에 드로잉을 하듯 구리선으로 거대한 몸을 만들어 설치한 안재홍은 ‘꿈꾸는 몸’(작품 제목이기도 하다)을 뭉치거나 흐르는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몸이 빠져나간 옷들을 허공에 매단 김윤경의 설치작품이나, 누군가 신었던 하이힐 한 짝이 얌전하게 등장하는 황혜선의 영상작품에서 옷과 신발은 몸 혹은 기억의 체취를 간직한 살아있는 화석이다.
전시장을 구획한 4개의 소주제는 서로 맞닿고 자주 겹치면서 몸의 풍경이라는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룬다. 각 작품과 작가들 간의 차이와 흐름, 그 사이의 연결고리를 탐험해 자신만의 신체풍경을 그려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8월12일까지. (02)2124-8800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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