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규 경제부총리가 18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다.
경기가 둔화하고 부동산시장도 불안하던 1년 전과 비교하면, 지수 2,000을 목전에 두고 있는 주가가 말해주듯 경제지표도 좋아졌고 부동산가격도 안정됐다.
반대세력을 설득해가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마쳤다. 금융계에 빅뱅을 가져올 자본시장통합법도 이해집단간의 갈등을 조정하면서 마무리했다.
기업환경개선대책, 서비스경쟁력강화대책 등 굵직굵직한 정책들도 어느 정도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자제한법과 분양원가 공개 및 분양가 상한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 민감한 사안마다 시장원리보다는 청와대와의 코드맞추기에 급급했다는 점에서 오점을 남겼다는 지적도 많다.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 매각 의혹과 관련해 후배 관료들이 줄줄이 수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는 동안 침묵을 지켜 리더십을 상실했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부동산시장을 잡는다며 옥석구분을 하지 않는 고강도 세금폭탄 정책으로 현정부에 대한 중산층의 민심이반도 부채질했다.
업무량으로 따지면 권 부총리는 역대 누구보다 바빴다. ‘정리와 마무리’에 치중했던 역대 대통령 임기 후반기 경제부총리와 비교하면 그는 계속해서 일을 벌여왔다.
1,2단계 기업환경개선 종합대책, 1,2 단계 서비스산업 경쟁력강화 종합대책, 비전2030 인적자원 활용분야 추진계획, 자본시장통합법, 기업의 대외진출 촉진과 해외투자 확대방안, 금융기관 해외진출 지원방안, 두 차례 부동산대책 등… 소위 ‘종합대책’만 10개가 넘는다.
한미FTA 협상타결 등을 포함하면 거의 한 달에 한 개씩 큰 정책을 추진한 셈이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기업 애로를 해결하고, FTA 타결과 자통법 등 경제발전의 디딤돌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공(功)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이나 경기관리도 비교적 무난했다는 평가이다. 작년 4분기 6.5%에 달했던 전국 주택매매가격 상승률은 올 1분기 1.4%, 2분기 0.3%로 안정됐다. 소비와 투자도 올 2분기부터 회복국면에 진입하는 모습이고 주가는 넘치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러나 기름값 고공행진에도 불구하고 유류세 인하 불가를 고수하고, 일자리 창출 역시 올 6월을 제외하고는 당초 목표 30만대를 밑돌면서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개선된 게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장경제원리보다는 청와대와 ‘색깔’과 ‘코드’ 맞추기에 치중했다는 비판이 많다. 인사청문회에서 “기업의 자율성과 영업비밀을 침해할 소지가 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반대했던 분양원가 공개는 결국 반년 만에 번복됐다.
반대입장을 명확히 했던 이자제한법도 작년 말 노무현 대통령이 “불법 사금융 피해 종합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입장을 바꾸었다.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체계도 노 대통령이 수수료 인하를 지시하면서 민간 자율에 맡기겠다던 기존 입장을 바꿔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청와대의 지시로 시장원리에 대한 소신이 너무 쉽게 무너진 것이다.
재경부 내부 인사에서도 코드인사 비판을 받아야 했다. 국장 이상 간부의 3분의 1이 같은 고교 후배인 경기고 출신들로 채워졌고, 특정 인사들을 요직에 배치하기 위해 발령을 낸 간부급들을 4~5개월 만에 다시 자리이동 시키기도 했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임원은 “권 부총리가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할 정책들을 발굴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경제정책의 관제탑으로서 정치적 논리의 청와대 요구를 견제하기보다 오히려 코드를 맞추었다는 측면에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강조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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