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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주역(周易)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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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주역(周易)의 유혹

입력
2007.07.1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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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맹자 등 유교의 일곱 경전을 사서삼경(四書三經)이라 부르는데, 삼경의 하나인 <주역> 은 점술서로도 흥미 있는 책이다. 중대한 일을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를 때에 결심하기 위해서 단 한 번만 스스로 점을 쳐보라고 되어 있다. 게다가 그 방법도 꽤나 복잡하다. 그러니 요즘 세상에 인기 없는 것이 당연하다.

0이나 1을 여섯 개 적어놓은, 예를 들면 011010을 괘라고 부른다. 0과 1 은 음양을, 00, 01, 10, 11 은 사상을, 000부터 111까지 여덟 개는 팔괘를 나타낸다. 괘는 모두 64개지만, 점을 치면 결과는 4,096개가 나온다.

필자가 주역에 흥미를 가진 이유는 건곤(乾坤)부터 시작해서 책에 나오는 64괘의 순서에 담긴 이산수학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공자는 마음대로 전해오던 순서를 바꾸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어떤 규칙이 있었는지 찾아보려고 다른 수학자의 의견을 묻기도 했는데, 그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다.

<마왕퇴의 귀부인> 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의전당을 다녀갔던, 중국 한나라 초기 고위귀족 신추의 묘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굴유적이 있었는데, 2,100년 만에 나온 백서주역(비단에 적힌)에는 전혀 새롭고 깔끔한 순서가 나와 있었다. 순서를 뒤바꾼 것은 역시 공자가 아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백서주역을 알려준 동양철학자 이기훈 박사에게 감사 드린다.

순서가 바뀐 이유를 문외한으로서 이렇게 추측해본다. 진시황처럼 한나라 초기에도 책들을 태워버린 적이 있었다. 당시 주역은, 점치는 실용서적으로 봤기 때문에 깔끔한 수학적 순서는 그 과정에서 가치를 잃어버리고 각각의 점괘들만 뒤섞여서 살아 남았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미ㆍ적분을 발견한 라이프니츠가 이진법이 우주의 원리이며 이진법을 사용하면 언젠가는 인간과 대화하는 기계(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해서 17세기 과학계에서 무시당했지만, 선교사가 중국에서 보내준 주역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어 서재에 64괘를 걸어두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인류의 집단무의식을 제안한 심리학자 융(Jung)은 오랜 실험 후에, 주역이 자신의 무의식과 의식을 연결시켜주기 때문에 점괘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는 유명한 서문을 1949년에 써줬다.

놀랍게도 그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연상시키는 “주역,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라고 주역에게 물어봐서, 점잖은 사람이 그런 질문을 받고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괘도 얻었다고 적었다. 참고로 “나는 증명할 수 없다”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1931년에 발견되었다.

유전정보를 표현하는 DNA에서는 네 가지의 염기가 세 개씩 묶여서 64가지 방법으로 아미노산을 지정하는데 이 때문에 주역과의 연관성을 찾아보려는 사람도 간혹 있다. 아미노산을 표현하는 방법이 어떻게 염기 2개에서 현재의 염기 3개로 진화했는지 설명했다는 생물정보학 논문을 떠올려주는 재미있는 생각인데 아직은 우연의 일치로 보인다.

그 이후로 주역을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또 다른 유혹이 찾아왔다. 원전의 복잡한 방식은 요즘 사용하는 동전 던지기와 다른 결과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자주 나오는 괘가 있고 그렇지 않은 괘가 있다. 희귀한 사건이 뉴스가 되고 더 많은 정보량(엔트로피)을 가진다는 정보이론이 떠오른다.

한상근 한국과학기술원 수리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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