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2일 미군 증강 이후의 이라크 전황에 대한 1차 중간보고서 공개에 즈음해서 ‘조기철군은 없다’고 강변했지만, 실상은 이미 그가 막다른 길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징후들이 보다 뚜렷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부시 행정부가 스스로 전황을 평가한 중간보고서 내용 자체가 이라크주둔 미군의 조기 철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중간보고서는 총 18개 평가항목 중 이라크내 알 카에다 준동 억제, 종파 간 갈등 해소, 석유자원 배분노력 등 핵심 8개 분야에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는 헌법심의위원회 구성, 군소정당 권익 보호 등 다른 8개 항목은 만족스럽고, 나머지 2개 항목은 평가가 복합적이라며 ‘물타기’를 시도했으나 대세를 뒤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욱 결정적인 대목은 9월 중순 보다 완전한 형태의 2차 정식보고서가 다시 의회에 제출될 예정이나 앞으로 2개월동안 이라크 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이 2개월의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때 가면 (이라크전 실패는 한층 명확해져) 오히려 훨씬 첨예한 철군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회의 움직임도 부시 대통령에 대한 포위망을 하루가 다르게 좁혀 들어오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 등 유력 대선주자들이 철군론의 선두에 서 있는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리처드 루거, 피트 도메니치 상원의원 등 공화당 지도급 인사들 사이에서도 이라크 정책 수정요구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 주도의 하원은 12일 부시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은 지 수시간만에 이라크 주둔 미군 전투병력 대부분을 내년 4월1일까지 철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철군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부시 대통령에 대한 압박을 또 한번 가시화했다.
여기에다 9ㆍ11 테러의 주범인 알 카에다가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역량을 재구축했다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도 부시 대통령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알 카에다 역량회복설은 5년 동안 진행돼온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신뢰를 근본부터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시 행정부가 “지금 밀리면 불타는 철군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발설조차 꺼리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미군의 감축이나 임무축소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대선이 다가올수록 공화당 내부로부터도 더 강력한 철군 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 분명한 만큼 내년 초 철군을 시작하고 미군의 임무도 이라크군 훈련 등으로 축소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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