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되면 세계 100대 대학 명단에 10개 대학을 넣겠습니다.”(한 대통령 선거 예비 후보)
“2015년까지 세계 30대 대학으로 도약하겠습니다.”(2025년 서울대 장기발전계획)
가는 곳마다 ‘세계 몇 위’ 대학 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구체적 계획도 없이 대학들은 ‘몇 위’를 부르짖으며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정부나 정치인까지 세계 몇 위 대학을 만들겠다고 큰 소리친다.
국내 대학들의 ‘순위 지상주의’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영국 더 타임즈의 세계대학 평가 담당 프리랜서 기자인 마틴 잉스씨는 12일 “유럽이나 미국 대학들은 순위를 참고만 할 뿐 인데 한국 대학들은 유난히 순위에 매달린다”고 지적했다.
실제 평가기관마다 기준이 제각각이고 평가 기준이나 자료 수집 과정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순위 자체를 ‘100%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학계에 강하게 퍼져 있다.
그러나 국내 대학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순위 올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몇 위 안에 들면 대서특필되면서 자연스레 학교 홍보가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평가 기관이 대학들이 제출한 자료를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 쓰는 상황이라 자료 뻥 튀기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해 한 사립대학은 ‘교수 1인 당 학생 수’를 부풀려 제출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평가 기관에 눈 도장을 받으려는 대학들의 과열 홍보도 비난을 사고 있다. 고려대와 연세대, 성균관대 등은 11일 홍콩에서 열린 ‘애플 컨퍼런스’(아시아태평양지역 교육지도자 회의)에 참가했다. 이 모임은 더 타임즈의 세계 대학 평가를 총괄하는 QS사가 주최했다.
회사 대표 벤 소터씨가 12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대학교육협의회의 ‘글로벌 대학순위 평가의 실제와 대응’포럼에 참석하기로 한데다 더 타임즈 대학평가의 자료 제출 마감일이 15일로 코 앞으로 닥친 점을 감안하면 ‘얼굴 내밀기’ 성격이 짙다. 특히 연세대는 내년에 열릴 ‘애플 컨퍼런스’를 주최하기로 했고, 4월에는 더 타임즈에 이미지 광고를 실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일부 대학은 지난해 자료를 싸 들고 영국까지 가서 홍보를 했다”며 “우리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QS측 관계자와 식사를 함께 했다”고 말했다.
대학이 순위 올리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학내 곳곳에서 잡음도 일고 있다. 서울대 인문대의 한 교수는 “자연과학 분야의 논문색인인용(SCI)이 주요 평가 기준이 되다 보니 짧은 시간에 투자해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자연과학 분야로 재정 지원이 몰리고 있다”며 “인문학은 오랜 동안 지원이 필요한 데다 평가 기준에 반영도 안 돼 외면받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교수는 “숫자 놀음에 돈만 쏟아 붓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교수들이 많다”며 “교수 수를 늘리고 학생 복지, 연구 풍토 조성 등을 통해 교육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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