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만에서는 상관의 학대나 군 생활 부적응으로 자살한 군인에게 터무니없는 액수의 장례식 보조비 외에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2002년에야 국방부는 자살한 군인에게 질병 사망자 수준으로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법을 개정했습니다.”
대만 군(軍) 인권운동의 대모(代母) 천비어(陳碧娥ㆍ51) 대만 군중(軍中)인권촉진회 대표가 12일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1995년 6월 군복무 중 숨진 아들 황궈장(黃國章)의 사인을 규명하면서 평범한 주부에서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그는 ‘후앙마마’(黃媽媽ㆍ황씨 성을 가진 아이의 엄마)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들이 배에서 뛰어내려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군에서 전해 들은 그는 며칠 뒤 발견된 시신이 상처투성이에다 쇠못까지 박혀 있는 것을 보고 군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판단했다. 국방부에 찾아가 항의한 것이 수 차례. 하지만 그럴 때마다 국방부로부터 냉대를 받았고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 나오기도 했다.
천 대표는 이날 한국의 군의문사 유가족들과 만난 뒤 강연회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군대와 접촉하려고 노력하면서 병사들의 처우가 얼마나 가혹한지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같은 처지의 희생자 가족과 힘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해 군중인권촉진회를 설립했다. 신병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군인인권카드’를 만들어 나눠주고 군내 인권보호를 역설하며 전국을 누볐다. 군대 내 심리 상담을 집요하게 요구했고 결국 모든 대만 군부대에 ‘정신건강센터’가 설립돼 장병들이 민간 심리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됐다.
98년 대만 국방부가 군인보험제도를 도입토록 하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그 해 7월 1일부터 실시된 사고보험제도는 군 복무 중 장애를 입거나 숨진 장병에게 최고 350만 대만화(9,800만원)를 지급토록 하고 있다. 또 종신보호제도에 따라 중증 장애 제대 군인은 무료로 치료 받고 요양할 수 있다.
군내 사망사건의 진실 규명 운동도 꾸준히 벌이고 있다. 덕분에 95년 408명이던 대만 군내 사상자 수는 99년 270여명, 2002년 200명으로 줄었다. 그는 “사망 사건 조사 결과가 아직도 유가족이 충분히 납득할 정도는 아니다”면서도 “군대가 사망 사건을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만 국방부도, 한때 ‘미친 여자’라는 비난까지 받았던 그를 국방정책 감독 기구인 ‘관병권익보장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기에 이르렀다. 천 대표는 10여년에 걸친 인권운동 동안 “얼굴 모르는 분들의 무수한 지지와 격려가 군대 인권개선운동을 이끌어주었다”며 한국 유가족들과도 연대할 뜻을 밝혔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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