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그제 공직기강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국책연구소가 대선후보 공약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총리의 말마따나 대선후보의 공약은 대부분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고 대규모 예산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해당분야 전문성을 갖춘 국책연구소가 관련 공약의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을 미리 분석하고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일견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수학문제 풀 듯이 가치판단이 배제된 명쾌한 작업이 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더욱이 대선공약에는 대부분 정치적 판단이 깔려 있어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는 생각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돌이켜 보자. 2002년 대선 국면에서 어느 국책연구기관이 행정수도 이전의 타당성을 정치적으로 치우침 없이 분석해낼 수 있었겠는가.
수자원공사가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이명박씨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계획의 타당성을 검토한 문건이 불법으로 유출돼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또 다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은 박근혜씨의 열차페리 계획 타당성 분석을 시도한 흔적이 있다. 한 총리의 주장에서는 이 같은 국책연구기관들의 무리한 정치 개입성 활동을 합리화하려는 속셈이 읽힌다.
국책연구기관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기관들이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검증하자고 나선다면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도 수긍하기 어렵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기관들이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에 봉사하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신종 관권선거라고 비난하고 나선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 총리는 "공직자들이 개인적 비공식적으로 검증 결과 등을 유출하거나, 변조해서 유출하는 것이 문제"라며 마치'유출'만이 문제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유출 이전에 국책연구기관의 공약 검증 자체가 정치적으로 오염될 수 있다.'개인적ㆍ비공식적'유출이 아니라 다른 어떤 형식으로 공개된다 해도 논란을 피할 수 없다. 한 총리는 이 뻔한 사실을 외면하지 말고 순리를 따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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