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고등사기”라고 말한 백남준 선생에게 지나친 영감을 받은 탓일까? 미술계의 학력/경력 위조가 화제다. 그 가운데서도 제7회 광주비엔날레의 (공동)예술감독으로 발탁된 신모 교수의 학력/경력 위조 드라마가 최고다. 그러나 어디 학위 논문뿐일까? 그간 신씨가 자신의 홍보 기회로 활용해온 인터뷰 기사들을 종합해 보면, 놀라운 이야기가 완성된다. 과연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일까?
신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를 중퇴한 다음, 캔자스 주립대 등에서 경영학과 회화와 서양화를 3겹 복수 전공했고, 경영대학원에서 MBA까지 마쳤다.
아 참, 그 사이에 무너진 삼풍백화점의 잔해에 9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극적으로 구출되기도 했다(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이런 경험을 밝힌 주요 일간지 인터뷰 기사가 있다). 1997년에는 예일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갔고, 2005년에는 <원시주의의 촉매자 기욤 아폴리네르와 뒤샹, 그리고 피카비아(guillaume apollinaire: catalyst for primitivism, picabia and duchamp)> 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획득했다며 다시 일간지와 인터뷰까지 했다. 곧이어 그는 동국대 교수로 특채됐다. 원시주의의>
그런데, 문제는 그가 자신의 것이라 주장한 논문이, 1981년 버지니아 대학에서 통과된 박사학위논문(그것도 꽤 유명한)이라는 점이다. 표지 등을 바꿔 남의 논문을 제 것으로 조작한 것이다. 예일대 재학생/졸업생 데이터베이스에 신씨의 이름이 없음은 물론이다. 미술사학과의 박사학위 청구자 목록에도 없고, 후보자 명부에도 없다.
예일대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장진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불교신문을 통해 “만약 신 교수가 자신의 주장대로 1996년 입학해서 2005년 박사학위를 받았다면 1997년 입학해서 2004년 박사학위를 받은 나와 어떻게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을 수 있는가”라고 밝힌 상태.
위와 같은 문제들 때문에, 최근 나는 보다 면밀한 조사를 거친 뒤 광주비엔날레 측에 정식으로 경력 검증을 요구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언론을 통해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가짜박사 표절논문 의혹’이라는 뉴스가 보도됐다. 동국대 교수로 특별 임용될 때 자료로 제출했던 학위 논문이 위조로 들통이 나면서, 생각보다 문제가 일찍 터진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미술계엔 신씨 외에도 적잖은 수의 학력/경력 위조자들이 활약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뉴욕대(NYU)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서 학위논문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조차 자신이 뉴욕대 미술사학과에서 공부했다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대학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있는가 하면, 뉴욕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를 사칭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엔 자신이 뉴욕현대미술관의 초청큐레이터라고 주장하는 이도 등장했다.
물론 모두 사실이 아니다. 이런 치들에 비하면, 소위 '유학'을 갔다가 입학만 하고 졸업은 안하거나 혹은 못했으면서 이력서에 졸업한 것처럼 적어놓은 작가들은 그저 귀여운 수준의 작은 사기꾼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미술계는 이번 사건을 반성의 기회로 삼아 엄정한 학력/경력 검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이 주요 직책에 오르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학력/경력 위조의 예술’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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