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문학동네'마라의 죽음'과 자살청부업자
“지롱드 당의 청년당원이었던 샬롯 코데이는 자코뱅 당의 마라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거짓 편지를 미끼로 접근, 목욕중인 마라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1793년 7월 13일의 일이었고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소설가 김영하(39)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1996)에서 장 폴 마라의 죽음을 쓰고 있다. 프랑스혁명 직후 신문 ‘인민의 벗’을 창간하고, 소농ㆍ소시민의 생활권 보장과 모든 특권계급의 폐지를 외친 급진 혁명가 마라는 그렇게 자기 집 욕실에서 한 처녀에게 암살됐다. 50세였다. 나는>
마라의 죽음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 것은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다비드(1748~1825)의 그림이다. 마라의 동지였던 다비드가 3개월 만에 완성한, 순교자를 닮은 혁명가의 죽음을 그린 ‘마라의 죽음’은 그 자체 혁명의 힘찬 연료이자, 회화사에 남는 명작이 됐다.
<나는 나를…> 은 이 그림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비드의 마라는 편안하면서 고통스럽고, 증오하면서도 이해한다. 한 인간의 내부에서 대립하는 이 모든 감정들을 다비드는 죽은자의 표정을 통해 구현했던 것이다.” 나는>
자살청부업자라는 기묘한 직업을 가진 화자를 등장시킨 <나는 나를…> 에서 김영하는 자살ㆍ죽음이라는 화두를 잡고 우리 시대의 음울한 초상을 솜씨있게 그려보인다. 나는>
이 자살안내자는 잠재적 의뢰인들에게 속삭인다. “나는 아무 예고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느냐고. 그때 내 손을 잡고 따라오라. 그럴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 일이다.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도 그대들 갈 길을 가라.”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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