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에서 인도의 명문 푸네대학의 나렌드라 자다브 총장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카스트(신분 계급) 제도가 엄격한 인도에서 '불가촉 천민'으로 태어나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인도 중앙은행 수석 보좌관을 거쳐 대학총장이 된 그는 "1950년 법적으로 카스트 제도가 폐지된 후 천민들의 필사적인 교육열이 인도 경제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고 말했다.
인도처럼 카스트 제도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신분 계급이 무너졌고, 높은 교육열을 통해 계층이동이 활발해졌으며, 전반적인 교육수준 향상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교육은 신분과 계층 이동을 가능케 하는 가장 확실한 투자였다.
● 교육의 대물림, 가난의 대물림
농촌의 부모들은 소 팔고 논을 팔아 아들을 도시의 대학으로 보냈고, 그래서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부르기까지 했다. 논도 소도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은 가정교사 신문배달 막노동 등으로 학비를 벌며 말 그대로 고학(苦學)을 했다. 오늘 사회지도층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고학으로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오늘의 교육은 대다수 국민에게 희망이 아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은 넘을 수도 뚫을 수도 없는 절망적인 벽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조차 잊혀져 가고 있다. 교육의 대물림, 가난의 대물림이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사수(死守)하고 있는 3불정책(고교평준화 폐지, 고교 등급제, 대학 기여입학제)이나 내신 반영률을 높여 공교육을 살리겠다는 정책 등은 가난과 교육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것이 목표다.
목표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목표가 옳다고 해서 정부가 집착하는 방법도 옳은가. 그것만이 유일한 길인가. 다른 주장은 모두 '기득권층의 이기주의'에서 나온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하고 폭 넓게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기회균등 할당제도 탁상공론에 가깝다. 저소득층 자녀들을 정원 외로 뽑아서 장학금을 지원하겠다는 충정은 옳은 것 같지만,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치는 학생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학습능력도 문제가 될 수 있고, 당장 생활비가 급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걱정스럽다.
저소득층을 위한 교육 지원은 유치원에서 시작해야 한다. 초중고 과정에서 충실한 교육을 받은 후 자력으로 대학입시에 합격하도록 돕는 것이 정도다. 대학입학에서 기회균등 혜택을 주는 것은 너무 늦다.
빈곤 지역의 각급 학교들을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시급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을 통해 자기성취를 하고 계층이동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되돌려 줘야 한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조기유학이라는 이름 아래 가족해체를 무릅쓰고 한국을 떠나고 있다. 수만 명의 교육난민이 미국 등 선진국 뿐 아니라 동남아로까지 몰려가고 있다.
교육부담 때문에 출산율이 세계 최저수준으로 떨어지고, 많은 부모들이 빈손으로 노년을 맞고, 가정교육이 실종되고 있다. 학생들은 참다운 공부가 아니라 '시험문제를 잘 푸는 기계'로 훈련 받고 있다.
● 빈곤지역 초중고를 지원해야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 삼수를 하고, 재학 중 군대에 가고, 언어연수를 위해 휴학하고, 졸업 후 직장을 얻기 위해 이삼년 뛰어다니다 보면 평균 이십팔구세에 직업인이 되는 것이 우리 젊은이들의 현실이다.
다른 나라에서 그 나이는 잘 훈련된 전문 직업인이 되는 나이다. 세계시장에서 어떻게 그들과 경쟁하여 살아 남겠는가. 교육을 이대로 두고는 우리의 미래가 밝다고 말하기 어렵다.
수많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이미 완강해진 장벽을 허무는 데 만 집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교육을 정치도구화하지 말고,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지 말고 '평등과 경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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