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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장편소설 ‘바리데기’ 낸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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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장편소설 ‘바리데기’ 낸 황석영

입력
2007.07.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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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기로 하고 나왔다. 이제 내 역할은 끝났다”고 황석영(64)씨는 전제했다. “기운은 떨어지는데, 소설 쓰는 게 재미있어지니 큰일”이라는 말이 너스레만은 아니었다. 10일 새 장편 소설 <바리데기> (창비) 출간 기자 간담회는 <심청, 연꽃의 길> 이후 4년의 세월을 부려놓는 자리였다. 이승도, 저승도 그에게는 다른 이름의 하나일까.

사회주의의 스러짐을 그린 <오래된 정원> (2000), 외래 이념(마르크스주의, 기독교)의 충돌로 빚어진 비극 <손님> (2001), 심청의 몸에 19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관통시킨 <심청, 연꽃의 길> (2003) 이후 잰 걸음으로 동서와 남북을 주유한 작가가 내놓는 이승의 축도다.

서사 무가 <바리공주> 의 길을 밟고 있는 이 장편은 청진 - 옌지(延吉) - 다이렌(大蓮) 런던 등을 지리적 배경으로 하면서, 작품 중 현실을 구소련 붕괴ㆍ김일성 주석 사망에서 아프간 전쟁 등 당대로 바싹 당겨온다.

관타나모 수용소 사건까지 끌어안는 이 소설은 그 간 만난 모든 원혼들을 달랠 생명수를 찾으러 서천의 끝, 즉 저승까지 주인공을 데려간다. 끝은 열려 있다. 바리의 뱃속에는 생명의 씨가 자라고, 세상은 여전히 테러가 지배한다. 현실은 지옥도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작품은 심청에서 나온 싹을 잇고 있다. “심청ㆍ바리는 미리 계획된 거예요. 세계제국주의의 경계 짓기 싸움에서 동아시아가 편입되던 19세기, 세계화 체제의 21세기는 재편 과정에서 흡사하죠.” 그는 작품을 두고 “세상을 재편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나 생각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동과 조화가 소설의 주제죠.”

작가가 세상을 주유한 경험이 삼투돼 있다. “한반도 안과, 바깥의 현실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었어요.” 중국 가니 마침 천안문 사태가 벌어졌고, 독일 가니 베를린 장벽 무너졌으며, 미국 갔더니 LA 폭동이, 영국서는 폭탄 테러가 터졌다. 폭력에 휘둘리는 세계를 은유하는 이 작품은 남북ㆍ정치 문제의 굴레를 훌쩍 뛰어 넘고 보편성에 접근한다. <손님> 을 쓸 당시에는 이념성에 격한 항의를 받기도 했으나, 바리데기는 남북 모두 할말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스스로 시원하다”고 했다.

그는 “여인의 몸으로 찢겨진 삶의 공동체를 구현하는 <바리데기> 는 한국판 페미니즘의 중요한 서사”라며 “서천길, 피, 모래, 불바다 등을 뚫고 밀항하는 부분은 5, 6차례 고친 것”이라며 저간의 공을 돌이켰다. 그는 “고전을 소재로서만 활용하는 데서 벗어나, 고전 형식을 실험했다”며 “철도원 3대 이야기, 강남 형성사 등 1990년대에 세운 창작 계획 중 하나”라고 작품의 의미를 밝혔다.

런던 2년, 파리 1년 8개월 체류의 경험이 삼투돼 있다. “지금 세계는 체제 변환의 이행기다. 두 도시 꼭 같다. 도둑, 치안 불안. 불법 체류자들의 노동으로 지탱되고. 자본주의의 피, 사회주의의 무지몽매한 피가 섞여 새로운 악이 창출되고 있다.” 소설은 지옥도이기도 하다.

그는 “다음 작품은 훨씬 젊고, 경쾌하며 날렵한 중편으로 생각 중”이라며 “겨울쯤 600여 매짜리로 하나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설은 보람영화사가 영화 제작을 위해 판권을 사 간 상태다. 그는 10월 중순, 4년에 걸친 외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해 2년 정도 시골에서 칩거하면서 작품을 구상하겠다고 말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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