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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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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지하수

입력
2007.07.1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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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이맘때다. 보리 타작이 다 끝나고, 부엌이나 처마 곳곳에 내건 마늘도 다 말랐다. 논에서는 제초작업이 한창이고, 아낙네들은 콩밭을 매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점심 시간에 집으로 달려와 보리밥을 한 주걱 그릇에 퍼 담았다. 고추장 단지에서 고추장 한 숟가락을 뜨고, 부엌에 걸린 마늘 한 통을 뜯어서 깠다.

햇볕에 뜨뜻해진 물 한 바가지를 펌프에 넣고 한참 자으면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졌다. 그 물에 보리밥을 말아 마늘에 고추장을 찍어 후닥닥 한 그릇을 비우고 학교로 내달렸다. 시원하고, 눈물이 핑 돌도록 매운 점심 한끼였다.

■펌프를 박기 전에는 우물을 썼다. 곳곳의 공동 우물은 아낙들의 집회소였다. 온갖 소문을 나누고, 고된 시집살이를 서로 하소연하며 잠시 고역을 잊었다. 거기서는 분명 고통은 나누면 줄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졌다.

집에 따로 우물이 있는 사람은 여름 내내 우물 안에 바구니를 밧줄에 매달아 늘어뜨려 두고 수박이나 참외, 오이, 토마토 등을 담았다. 물김치 독을 매달기도 했다.

우물이 냉장고 못지않았다.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거나 펌프로 잣아 올린 물은 냇물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시원했다. 무엇보다 남정네들의 등목에 그만이었다.

■지하수의 오염 위협이 심각하다. 여름철 들짐승이나 날짐승의 분변에서 나온 대장균으로 오염되는 일이야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땅 속 깊숙이 파고 든 중금속이나 유해화학물질에 오염된 지하수는 아직 생소하다.

환경부가 지난해 전국 4,740 곳의 지하수 수질측정지점 조사 결과 6.3%인 299개 지점이 수질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의 4.8%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특히 3염화에틸렌(TCE)이나 4염화에틸렌(PCE) 등 화학물질이나 중금속 등 특정유해물질이 기준을 넘은 지점도 47개소에 달했다.

■지하수 오염은 대기오염과 하천ㆍ호소 오염, 토양오염 등의 종합적 결과이다. 오염된 대기를 적신 빗물, 하천과 호소로 흘러 든 하수가 두터운 토양을 통과하면서 오염물질이 다 걸러지지도 않을 뿐더러, 더러는 토양 속의 오염물질을 녹여 지하로 운반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마실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농업용수나 공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지하수가 적지 않다. 더위와 갈증을 씻어줄 시원한 샘물이나, 땀이 가득한 몸을 식혀줄 펌프물이나 우물물이 자꾸만 줄고 있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우리 삶의 한 자락이 잘려 나가는 듯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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