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법원이 외국 펀드의 적대적 기업 인수ㆍ합병(M&A)에 대한 방어책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도쿄(東京)고등법원은 9일 국내에서도 KT&G와 경영권 쟁탈전을 벌였던 미국계 사모펀드인 스틸파트너스가 일본 조미료업체인 불독소스를 상대로 제기한 방어책 도입 중지 가처분소송 항소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종업원과 거래처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 가지고 있는 주식회사가 주주만의 이익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뒤 "스틸파트너스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난용(亂用)적인 매수자이기 때문에 불독소스의 자기 방어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불독소스는 10일 신주인수권 발행 등 방어책 실행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일본에서 적대적 M&A에 대한 기업의 방어책이 실행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방어책이 가동되면 신주인수권 발행권에 의해 스틸파트너스 이외의 주주가 보유하는 주식수가 4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반면 스틸파트너스측은 새 주식 대신 현금 23억엔을 받게 된다. 지분율도 10.52%에서 2.86%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스틸파트너스는 물론 일본 내 외국계 펀드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고 있다.
도쿄고법의 판결은 주주뿐만 아니라 종업원과 고객 등의 이익도 중시하는 종래의 '일본식 경영'을 존중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경영계획도 세우지 않을 채 적대적 M&A를 하는 기업사냥꾼에 대해 철퇴를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맥주회사인 삿포로홀딩스 등 다수의 일본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는 스틸파트너스는 전략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일본의 기업 풍토가 올해 주주총회에서 외국펀드 등 주주가 제안한 안건이 한 건도 채택되지 않을 정도로 보수적인 까닭에 이번 판결이 곧바로 적대적 M&A를 사실상 봉쇄한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M&A에 대한 과민반응이 일본에 대한 투자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불독소스는 5월16일 스틸파트너스가 주식공개매수를 제안한 데 맞서 지난달 24일 주주총회를 열어 방어책 도입을 결의했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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