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여성감독의 새로운 채털리
중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모아 두었던 세계문학전집에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 은 10대인 나에게 일종의 금서에 해당했다. <테스> 나 < 주홍글씨 >속에는 없던, 차마 말로 형연할 수 없는 생생한 성적 묘사가 책갈피를 뒤덮어 버린 소설은 책을 읽어 가는 내내, 한 소녀의 얼굴을 붉게 달아 오르게 만들었다. 테스> 채털리>
세월이 흘러 20년이 훌쩍 넘어 버린 어느날, 마침내 야한 곳만 골라 읽었던 <채털리 부인의 사랑> 을 처음부터 전부 읽을 기회가 돌아왔다. 채털리>
그날, 나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그만 울어 버렸다. 그 책은 사춘기시절에 알았던 그저 야한 소설이 아니라, 어떤 죽음의 공기도 막을 수 없는 생명력의 예찬, 한 여인이 자신 앞에 놓인 생을 포옹하고 초월하는, 몸의 오딧세이였다.
<레이디 채털리> 를 보면서, 다시 한번 원작의 향기에 흠뻑 젖는다. 80년대 학번에게 실비아 크리스텔은 유럽의 안소영 같은 배우였는데, 크리스텔의 가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쥐스트 재캥 감독의 채털리와, 이 영화가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프랑스 여성감독파스칼 페랑이 만든 <레이디 채털리> 는 자연 속에서 자신의 본능적 모성을 회복하고, 귀족사회의 억압을 뚫고 시대를 앞서간 여성으로 채털리를 새롭게 보게 만든다. 레이디> 레이디>
종종 걸음으로 산지기의 오두막으로 달려 가서 까치발을 들고 안을 들여다보는 호기심 많은 소녀의 영혼과 난생 처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하고서 상대방 남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성숙함이 공존하는 여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메타포 중의 하나는 질척한 '시선의 우물' 같은 '가슴'이 아니라, 모든 것을 쓰다듬고 끌어 안는 인간의 '손'이다.
루이 브뉴엘에게 '다리'가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가교인 것처럼, 파스칼 페랭에게 '손'이야말로, 입보다 더 많은 말을 머금은 은밀한 욕망의 처소인 것이다. 영화에서 상대방의 몸에 대한 발견은, 바로 손으로부터 가장 먼저 오기 시작한다. 이 촉각적 윤무에 의해 채털리는 자신이 아이를, 남자를, 그리고 생을 원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몸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나신으로 빗속에서 자신의 욕망의 환을 따라 빙빙 춤을 출 수 있게 된 그녀. 파스칼 페랭은 섬세하지만 단아한 방식으로 겨울 봄 여름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변화와 한 여인의 영혼과 몸의 변화 모두를 격조있게 포착하고 있다.
특히 아끼던 클로즈업을 모두 쏟아 부어내는 채털리와 산지기 파킨의 성애 장면은 여주인공 역을 맡은 마리나 핸즈의 천만가지의 얼굴변화로 그윽한 감정의 용광로를 달아 오르게 만든다.
남성 감독의 남성 관객을 위한 성적 판타지로 점철되었던 80년대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 그리고 여성감독의 손에서 다시 복원되고 확인되는 여성적 시선과 욕망과 깨달음의 삼중주 <레이디 채털리> . 그 옛날 한 여자의 몸에서 여성적 열기를 깨닫게 했던 원작처럼, 파스칼 페랭의 <레이디 채털리> 는 지극히 미학적인 방식으로 D.H. 로렌스의 원작을 복원하고 있다. 레이디> 레이디> 채털리>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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