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증권ㆍ상품거래소들이 앞 다퉈 인수ㆍ합병(M&A)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최근 글로벌 증시가 전례 없는 상승세를 보이면서 세계 시장에 넘쳐 나는 유동성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주도권 잡기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는 9일(현지시간) 119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파생상품거래소인 시카고상품거래소(CBOT)를 인수키로 최종 합의했다. 합병된 거래소의 명칭은 CME그룹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미국에 세계 최대의 선물ㆍ파생상품거래소가 탄생하게 됐다.
CBOT의 최대 주주인 칼레도니아 인베스트먼츠의 이사인 윌 바이칼스는 이날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이번 합병은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거래소 역사에 큰 의미가 될 것"이라며"두 거래소의 결합은 세계시장에서 보다 경쟁력 있는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밝혔다.
CME와 CBOT는 1970년대부터 통화와 금리에 바탕을 둔 금융 선물거래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두 거래소는 올해 1, 2월 3억8,800만 건의 총 거래 건수를 기록, 현재 세계 최대인 독일의 유럽선물거래소(EUREX)보다 1억2,000만 건 이상 많았다.
이에 따라 합병이 이뤄지면 이자율을 기반으로 한 금융선물상품에서부터 돼지고기와 옥수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선물이나 파생상품을 다루는 세계 최대의 거래소가 될 전망이다. CBOT를 인수 합병한 새로운 CME그룹의 1일 거래량은 900만 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거래소간의 인수ㆍ합병은 올들어 각국에서 잇따라 이뤄지고 있다.
런던증권거래소(LSE)는 6월말 이탈리아 밀라노거래소를 운영하는 보르사 이탈리아나를 16억 유로(21억5,000만 달러)에 인수, 두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의 시가총액 규모가 5조 달러 를 넘어서면서 세계 3위의 증권거래소로 거듭나게 됐다.
또 미국의 장외주식 시장인 나스닥도 5월말 스웨덴거래소인 OMX를 37억 달러에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앞서 런던증권거래소(LSE)를 인수하려다 실패한 나스닥은 OMX 인수합병을 통해 유럽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태세다.
또 4월에는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영국의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유로넥스트를 인수,'NYSE-유로넥스트'로 재출범했다. 유로넥스트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포르투갈 등 4개국의 통합 증시 거래도 맡고 있다.
당시 NYSE와 함께 유로넥스트 인수를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독일의 도이체뵈르제는 인수전에서 실패한 후 최근 미국의 2위 옵션거래소인 국제증권거래소(ISE)를 28억 달러에 사들이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같이 각국의 거래소들이 경쟁적으로 몸집 키우기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자본시장이 급팽창하면서 이에 걸맞은'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거래소 간 M&A가 이뤄질 경우 운영 비용이 절약되고 상장 및 거래도 촉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 넘쳐 나는 유동성은 주식 및 파생상품 시장을 더욱 빠르게 성장시켜 거래소들 간의 짝짓기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의 경영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 따르면 1993~2004년 전 세계의 국내총생산(GDP)이 두 배로 늘면서 주식파생상품과 채권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흘러 들어오고 있다.
특히 파생상품 시장의 경우 위험 회피를 위한 헤지펀드들의 투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일례로 CME의 경우 2000~2005년 거래 규모가 연평균 36.4% 증가했다.
아시아 거래소의 인수ㆍ합병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일본의 도쿄증권거래소(TSE)가 싱가포르증권거래소(SGX)의 지분 일부를 인수하는 등 아시아 거래소들 간 전략적 제휴 움직임도 늘고 있다.
정운수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전략기획팀장은 "향후 거래소 간 M&A나 전략적 제휴는 지역 구분 없이 더욱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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