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우려했던 갈등이 커져가고 있다. 지난 주말 이랜드 계열 대형 마트에서 벌어진 점거ㆍ농성 및 사업장 폐쇄는 이 법에 근본적 당위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제도로 자리잡기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알게 해 준다.
기업은 기업대로,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입법취지에 어긋나게 자신들의 목적과 주장만 내세우고 있어 입법 이전의 대립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양상이다.
매장 점거와 같은 극단적 투쟁방법엔 문제가 있지만, 이랜드 노조가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계산원의 외주 용역화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는 대형 유통업체의 경우, 그 동안 많은 노사갈등 끝에 합의와 절충을 이끌어 낸 사례가 적지 않다.
정규직 전환 비율을 조정한다든지, 기존 정규직원들이 기득권을 일부 양보해 비정규직의 요구를 흡수하는 등 노사 간에 양보와 타협을 찾아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우선 이랜드가 편법으로 입법 취지를 비켜가려 한 데서 시작됐다. 2년 후 정규직 전환을 의무화한 기간제 근로자들을 구조조정을 이유로 축소하고, 파견근로자 형태의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소급적용 규정을 원천봉쇄하려 들었다. 비록 불법은 아니라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도외시한 처사임이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순수 노사협상에 지나치게 개입해 이번 사태를 침체된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화선으로 삼으려 하는 것도 문제다. 자칫 어렵사리 얻은 국민적 공감대마저 훼손될지 모른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입법 때부터 노사 양측의 불만이 많았다. 사회적 필요성이 절실했기에 상호 양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틀을 만들어낸 것이어서, 우리는 일찍부터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만 보더라도 3월부터 노사의 대립이 심각해 지금의 사태가 예견됐으나 노동부는 '알아서 잘 하라'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정부의 강력한 법 정착 의지와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리더십이 없으면 비정규직 보호법은 싹도 틔워보기 전에 사문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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