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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 제도 폐지 이후/ 500만명 여전히 '신용불량자'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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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 제도 폐지 이후/ 500만명 여전히 '신용불량자' 고통

입력
2007.07.10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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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신용불량자 등록제도가 폐지되면서 한 때 400만명에 육박하던 신용불량자가 자취를 감췄다. 매월 발표되던 신용불량자 통계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그대로 남았다. 사회의 철저한 냉대 속에 이들은 살인적 고금리 사채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1. 업무상 차량이 필요해 최근 렌터카 회사를 찾은 최모(40)씨. 현금결제를 하려던 그에게 회사측은 신용 조회를 요구했다. “신용 구매도 아닌데 무슨 신용 조회냐”고 따지자 “규정상 그렇다”는 답변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용 조회를 했지만, 역시 결과는 ‘렌터 불가’ 판정이었다. 최씨를 더욱 좌절시킨 것은 그 이후. 신용 조회 때문에 그나마 9등급이던 신용등급은 10등급으로 추락했다.

#2. 신용불량의 굴레에서 허덕이던 서모(44)씨는 최근 마음을 다잡고 액세서리 수출 사업을 시작했다. 기신기신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수출 대금 350만원이 입금된 은행통장에 대해 세무서가 가압류를 한 것이다. 2000년 무렵 사업체를 운영하다 부도가 나는 바람에 소득세와 가산세를 합쳐 550만원을 미납했다는 게 이유였다. “제겐 생명줄과도 같은 돈인데 참 야속할 뿐입니다.”

#3. 법원에서 파산 면책을 받아 재기를 꿈꾸고 있는 한모(30)씨. 간신히 학교 기능직으로 취직해 공제 대출을 받으려 했지만 파산 면책자라는 이유로 보증보험 발급을 거절당했다. 한 외국계 은행은 예금통장 개설까지 거절했다. 한씨는 “저신용자는 대출은 물론이고 예금조차 받지 않겠다는 거냐”며 허탈해 했다.

신용불량자 등록 제도가 폐지됐지만 ‘실질적 신용불량자’는 오히려 더 늘어났다. 사회적 냉대도 예전과 다를 바 없다. 명칭과 통계를 없애 눈과 귀만 가렸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2005년 4월 신용불량자는 ‘금융채무 불이행자’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등록기준이 ‘30만원 이상, 3개월 연체’에서, ‘50만원 이상’으로 소폭 상향 조정됐을 뿐이다. 지난해 말 현재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280만명 수준. 1, 2금융권에서 대출은 물론 신용카드도 발급받을 수 없는 이들이다.

그러나 실제 금융거래 등을 거의 할 수 없는 ‘실질적 신용불량자’는 5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한국신용정보의 신용등급 분류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제도권 금융기관 이용이 어려운 9~10등급 저신용자는 전체의 12.4%인 423만명, 8등급 포함 시 616만명에 달한다.

“은행은 물론이고 2금융권도 아예 발을 못 들여 놓습니다. 금융채무 불이행자에 관한 정보를 고용 목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지만 여전히 4대 보험 가입 직장에는 취업을 할 수가 없어요. 신용회복 지원이나 파산 면책을 받아도 사회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합니다.” 10년 째 신용불량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모(39)씨의 하소연이다. 그는 이렇게 되묻는다. “다수의 선량한 채무자들까지 소수의 양심불량자들과 한 묶음으로 모럴해저드에 빠진 사람으로 매도합니다. 대부업체들만 혈안이 돼서 달려들 뿐이죠.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거죠?”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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