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평가 정교해져… 금융회사간 공유
미국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난관에 봉착하는게 신용카드 문제다. 신용카드 발급을 신청해도 신용을 확인할 수 있는 거래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기 일쑤다.
이들은 '신용 우수'(Good Credit)도 '신용 불량'(Bad Credit)도 아닌 '무 신용'(No Credit)으로 분류된다. 일정 금액을 예치한 뒤 체크카드를 1~2년 사용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하는 등 신용 거래 기록을 쌓아야 신용카드 한 장을 겨우 발급받을 수 있다.
이렇듯 미국인들에게 신용평점은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필수품이다. 신용관리 업체인 페어 아이작(Fair Isaac)사가 개발한 신용평점 'FICO 스코어'는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다. 집을 빌리거나, 차를 살 때, 직장을 구할 때, 심지어 결혼을 할 때도 신용평점이 요구된다.
수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신용의 불모지'였다. 카드 대란을 촉발하고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길거리 신용카드 발급이 대표적이다. 카드사들은 저마다 가판대 위에 수북이 사은품을 쌓아놓고 길 가는 행인들에게 신용카드를 마구 발급했다. 개인 신용 상태는 평가할 능력도, 따져볼 생각도 없었다.
신용불량자 제도가 폐지된 후 2년여간 국내 금융회사의 신용평가 능력은 크게 향상됐다. 은행들의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ㆍCredit Scoring System)은 한층 정교해졌고, 지점장 등의 전결 권한은 대폭 축소됐다. 인맥을 통해 대출 금리를 낮추고 한도를 늘리거나 '대출 불가'를 '대출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됐다.
민간 개인신용평가(CB)사의 등장도 큰 역할을 했다. 2002년 CB 영업을 시작한 한국신용정보와 한국신용평가정보에 이어 2005년에는 한국개인신용까지 가세했다.
각 CB사가 제공하는 신용평점과 신용등급은 은행 CSS에 주요 평가 항목으로 자리잡고, 개개인의 금융거래 이력이 낱낱이 금융회사간에 공유되고 있다.
특히 단지 불량 고객을 걸러내는 '컷오프(Cut-off)' 용도 뿐 아니라 우량 정보가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금리나 한도 산정에 반영할 수 있게 된 것은 주목할만한 변화다. 생활 필수품이 돼버린 신용평점, 그것이 신용불량자 제도 폐지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인 듯 싶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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