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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 직접 만들고…천체사진 찍고…'천문 마니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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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 직접 만들고…천체사진 찍고…'천문 마니아'의 세계

입력
2007.07.10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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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맑은 밤이면 잠 못 드는 이들이 있다. 구름 한 점 없고 바람도 잠든 그런 날 저녁 약속이라도 있으면 불안하고 화가 난다. 뭔가가 뒷덜미를 잡아당긴다.

밤하늘 별의 부름을 받는 그들, 아마추어 천문 동호인이다. 별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인 동시에 아마추어 동호인에게는 사랑의 대상이다. 직접 망원경을 만들어 관측하고, 사진으로 간직하려는 마니아들의 세상이 오늘 밤 어디선가 열리고 있다.

■ 별빛을 모으는 망원경 제작 동호인

유준규(39·대한항공 기장)씨는 망원경을 직접 만들어 별을 본다. 경통은 선반으로 잘라 조립하고 핵심 부품인 반사경도 유리를 사서 직접 간다.

좋은 망원경의 잣대는 반사경 표면이 얼마나 고르냐는 데 있다. 표면 요철을 20~30㎚(나노미터·10억분의1m) 이내로 만들기 위해 수백번 측정기로 재고, 다시 손으로 갈아낸다.

유씨가 가장 최근 만든 망원경은 리치 크리티앙식 30㎝ 반사망원경이다. 시중에서는 3,000만원은 줘야 살 수 있다. 5분의 1의 재료비만 들였지만 8개월의 땀과 정성을 쏟아야 했다.

이중 6개월은 온통 반사경 연마에 소요됐다. “지루한 작업이다. 특히 요즘엔 값싼 중국산 망원경이 흔해 망원경 만드는 일은 ‘미친 짓’이라고 한다. 하지만 망원경을 완성해 별을 관측할 때의 성취감은 도저히 이 미친 짓을 그만둘 수 없게 만든다.”

● 천체망원경제작동호회 유준규씨

세계서 유일 나만의 망원경 '짜릿'

반사경 표면 얼마나 고르냐가 관건

6개월간 수백번 측정 유리 갈아내

초등학교 6학년 때 짝꿍은 이 모든 애착의 시작이었다. 친구 집에서 본 그 작은 망원경은 어린 마음을 온통 뒤흔들었다. 부모님께 사달라고 졸랐다가 “얼마인줄 아느냐”며 혼쭐이 나곤했다.

그러나 열망은 가슴에 남았고,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헌책방에서 <천체망원경 만드는 즐거움> 이라는 책을 구했다. 첫 작품 8.5㎝ 망원경이 탄생했다. 처음엔 “비싼 망원경을 살 수가 없어서” 만들었고, 지금은 “기성 제품이 성에 안 차서” 계속 만든다. 완성 무렵이면 다음 도전 대상이 떠올라 1,2년에 한 개꼴로 만든 18개의 망원경이 방에 가득하다.

2년 전부터는 아예 ‘별통광학’이라는 망원경 판매업체 사무실에 2평의 공간을 얻어, 직접 제작한 연마기와 측정기를 들여놓았다. ‘두평옵틱스/대표 유준규’라는 종이문패가 붙은 이 곳에서 유씨는 꿈을 실현한다.

간혹 완성 직전의 반사경을 와싹 깨뜨려 낮술로 고통을 잊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계에서 유일한 망원경을 설계·제작하는 희열은 그 어디에도 비할 바가 아니다.

“15만원쯤 주고 값싼 유리와 나무 경통을 사서 한달만 고생하면 누구든지 200만원짜리 15㎝ 망원경을 만들 수 있다. 그걸로 우리 태양계의 행성을 관측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유씨는 “같이 미쳐보자”며 자신이 회장인 천체망원경제작동호회(www.atmkorea.com) 가입을 권유했다.

■ 순간을 영원으로, 천체사진동호인

디지털 천문사진 동호회(NADA·astronet.co.kr)에서 활동하는 이건호(40·한국전력기술)씨의 천체 사진은 아마추어의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붉은 빛이 꽃잎 같은 장미성운, 오색찬란한 말머리성운, 우리 은하 밖의 마젤란 대성운…. 허블우주망원경으로만 찍는 줄 알았던 성운과 외계 은하가 선명하게 잡혔다. 주변에선 그의 사진은 세계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 디지털천문사진동호회 이건호씨

수백만년 여행한 별빛'찰칵'

장미성운, 말머리성운, M81… 달 없고 날 맑은 밤 모두 바쳐

“예전엔 꿈도 못 꿨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요즘은 아마추어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품만 좀 들이면 멀리 있는 은하나 성운도 전문 천문대만큼 찍을 수 있다.”

이씨가 찍은 M81은 1,180만광년 떨어진 외계 은하다. 노란 핵 주변에 흰 나선팔이 휘감아 돌고, 그 위에 붉고 푸른 별들이 점점이 보인다. 이 한 장을 위해 이씨는 3개월동안 달 없고 날 맑은 밤을 모두 바쳤다.

지름 320㎜, 초점길이 1,500㎜의 반사망원경으로 5~10분씩 노출한 사진 40여장을 겹쳐 완성했고, 2005년 한국천문연구원 천체사진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먼 별빛은 여러 번 찍어 잡광을 상쇄하고 별빛은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씨 역시 중학생 무렵부터 별 보기를 즐겼다.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망원경을 들고 옥상을 오르내렸고, 어느 순간 미국 천문학 잡지의 화려한 사진에 넋을 잃었다.

어렵사리 친척 카메라를 빌려 찍다 건진 1장 사진에 환호했다. 1990년대 말 디지털 카메라로 바꾼 뒤에는 영상처리법을 익히느라 미국 동호회 사이트에서 살다시피 했다.

최근엔 사설 천문대가 많이 생겨 이씨는 망원경을 설치하고 인터넷에 연결해 원격 촬영을 한다. 예전엔 카메라에 코펠, 라면까지 챙겨 무작정 강원도 등지의 산에 올랐다.

93년 충북 제천에서 오리온대성운을 찍은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1시간 노출 내내 지구와 함께 자전하는 망원경의 초점이 흔들리지 않도록 꼼짝 않고 지켜보며 위치 보정을 했다.

기온은 영하 20도. 망원경은 열선을 감아 따뜻하게 유지했지만, 이씨 자신은 손발이 꽁꽁 얼었다. 이후 한 달을 앓았지만 사진을 본 순간 모든 고생이 잊혀졌다.

이씨는 별을 찍는 즐거움을 “수백만년동안 여행한 별빛이 내 눈에 들어온다고 생각해봐라. 짜릿한 전율이 절대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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