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깊은샘월북 작가의 창작혼, '경아리'의 인정풍속
월북 작가 박태원이 1986년 7월 10일 77세로 사망했다. 월북 이후 1970년 완전 실명, 1976년에는 뇌출혈로 인한 전신불수의 불운에도 박태원은 구술을 통해 북한 최고의 역사소설로 꼽히는 <갑오농민전쟁> 을 완성하는 놀라운 창작혼을 보였다. 갑오농민전쟁>
그의 이 같은 삶은 2004년 발굴된 한 자료에 잘 나타나 있다. 북한에서 재혼한 그의 의붓딸인 문필가 정태은이 평양에서 발간되는 ‘통일문학’에 기고한 ‘나의 아버지 박태원’이라는 글이다.
1930년 소설가로 등단한 박태원은 1933년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이상 이효석 등과 ‘구인회’를 결성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 <천변풍경> (1936~7)은 당대 최고의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품으로 평가된다. 원고지 40장 분량의 소설을 단 한 문장으로 쓴 <방란장 주인> 같은 작품에서는 그의 실험적 장인정신을 엿볼 수도 있다. 방란장> 천변풍경> 소설가>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천변풍경> 은 2월초부터 다음해 1월까지 1년간의 청계천변 사람들의 생활을 50개의 절로 나눠 쓴 소설이다. 천변풍경>
여인네들이 모이는 빨래터와 남정네들의 사교장인 이발소를 중심으로 ‘경아리’로 불리는 서울 사람들의 생활습속과 인정세태를 마치 카메라로 찍듯 세밀하게, 놀라운 우리말 구사와 문장의 힘으로 펼쳐 보여준다.
“그것, 다 괜은 소리… 덮긴, 말이 그렇지, 이 넓은 개천을 그래 무슨 수루 덮는단 말이유? 온, 참….” 청계천 복개 소문을 들은 이 소설 속 한 인물의 말인데, 복개됐다 다시 복원된 청계천을 박태원이 보았다면 무어라 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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