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군 생활을 하다 2005년 소령으로 전역한 박모(47)씨는 3년째 실업자 신세다. 그는 기업체의 인사나 총무 쪽 관리분야에 지원했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결국 박씨는 재취업을 포기하고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박씨는 “한창 일할 나이에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다”며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쳤는데 결국 남는 건 ‘나이 많은 사회 부적응자’라는 딱지와 ‘실업자’라는 계급장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제대후 실업자 계급장 떼기가 만만치 않네요"
5년 이상 군 생활을 하고 사회로 나온 중ㆍ장기 복무 제대군인들의 취업난이 심각하다.
8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02~05년에 전역한 중ㆍ장기 복무자 2만3,163명 가운데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9,902명(42.7%)에 불과하다. 10명 중 6명가까이 실업자인 셈이다. 현재 국방부는 군 개혁의 일환으로 병력 감축을 진행하고 있어 제대군인 취업 문제는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제대군인의 취업률이 형편없는 것은 군 복무 경력을 사회에서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데다 기업 입장에서는 평균 40세가 넘는 전역자들을 선뜻 채용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전역자들이 오랜 세월 사회와 격리돼 살아온 탓에 기업과 사회 트렌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요인도 있다. 제대군인들의 낮은 취업률은 군 사기를 떨어뜨리고 우수 인력을 군에 유치하는 데도 큰 걸림돌이 된다.
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국산업인력공단 별관 10층에서는 ‘군 전역 대상 해외취업설명회’가 열렸다. 설명회에는 전역을 했거나 앞두고 있는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의 군 간부 100여명이 참석해 제대군인의 취업난을 실감케 했다.
설명회가 진행된 1시간 30분 동안 참석자들은 “국내 취업도 어려운데 해외는 더 힘든 것 아니냐. 이 나이에 정말 해외 취업이 가능한 거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해외 취업에 필요한 절차와 과정을 소개하는 강사의 말을 꼼꼼히 받아 적었다.
내년에 제대하는 40대 초반의 영관급 참석자는 “먼저 제대한 동료들이 일자리가 없어 마음 고생을 하는 걸 보면 남의 일 같지 않고 불안하다”며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겠다”고 말했다.
제대군인 취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준비’와 ‘사회 적응 노력’이다. 전역 전에는 체계적인 직업 기술교육과 함께 컴퓨터 외국어 등을 배우고, 전역 후에는 명령조의 대화법과 경직된 사고방식 등 오랜 군 생활을 통해 몸에 밴 ‘군기’를 빼야 한다.
지난해 여름 소령으로 전역한 김모(43)씨는 전역 2년 전부터 취업 준비에 들어갔다.
기술병과 쪽에서 복무한 그는 군 생활을 하면서 기술사 자격증을 땄고, 사회에 먼저 나간 동료들과 지속적인 연락을 하며 인맥도 철저히 관리했다. 전역 뒤 곧바로 한 민간기업의 기술 파트 쪽 관리자로 취직한 그는 “유비무환이라는 말은 군에서든 사회에서든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역한 군 간부들의 재취업을 지원하고 있는 국가보훈처 산하의 서울제대군인지원센터 관계자는 “일부 제대군인들은 사회에 자신을 맞추기보다는 자신에게 사회를 맞추려고 하는 고집 때문에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업무 능력과 상관없이 군에서 관리자로 지냈기 때문에 사회에서도 관리자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제대군인지원센터가 지난해 기업 인사 담당자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제대군인의 취약점으로 ▦직무 이해도가 떨어지고 ▦사회 트렌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전직지원서비스업체 제이엠커리어의 서용원 팀장은 “기업은 제대군인의 리더십과 조직 충성심을 높이 평가한다”며 “전역 전에 취업 목표를 확실히 정하고 가고 싶은 기업의 인재상에 맞춰 구체적으로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 제대후 취업, 지원기관 활용하라
제대군인들이 취업난을 뚫기 위해서는 먼저 취업 관련 기관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취업 분야는 크게 두 갈래다. 예비군 지휘관 등 군의 영향력이 미치는 군 관련 분야에 취업하든지 민간기업에 입사 하는 것이다.
정부는 2004년부터 국가보훈처 산하에 ‘제대군인지원센터’를 운영, 제대군인의 일자리 찾기를 돕고 있다. 5년 이상 중ㆍ장기 복무자를 대상으로 취업 을 알선해주고 이력서 작성, 면접 등의 취업 노하우도 알려 준다. 센터는 서울 부산 대전 3곳에 있다.
국방부는 전역예정 군 간부들을 위한 취업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 자격증 교육 등 다양한 재취업 서비스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재취업과 관련된 공공기관과의 협조체계 구축이 활발하다. 국방부는 5월 한국산업인력공단과 군 전역간부 해외취업협력 협약을 맺었다.
공단은 장병들이 군 복무 중에 직업능력을 개발하도록 e-러닝 콘텐츠를 제공하고 강사를 파견하며, 전역 군 간부들을 대상으로 일본 중국 등의 해외취업 연수과정도 열고 있다.
공단의 임경식 해외취업지원센터장은 “나이가 많아도 군 복무 과정에서 익힌 기술과 기능을 바탕으로 일정 수준의 외국어 능력만 갖춘다면 해외 취업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보훈처는 최근 한국고용정보원과 제대군인 취업촉진을 지원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노동부 산하의 고용정보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취업 정보가 있는 워크넷(www.work.go.kr)을 운영한다.
두 기관은 ‘제대군인 직업정보시스템’을 구축, 취업지원에 필요한 고용 동향과 일자리 정보를 제대군인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제대군인의 원활한 사회 적응을 돕는 ‘제대군인 취업지원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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