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국회에서 한국고전번역원법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한문으로 된 한국고전 번역사업을 맡아온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는 이제 곧 한국고전번역원으로 거듭난다.
민추가 낸 번역본 신세를 누구보다 많이 진 사람의 하나로서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민추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실 분도 계시겠지만 <조선왕조실록> 을 번역한 기관이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열하일기> 나 <성호사설> 처럼 우리가 어지간히 아는 고전은 다 여기서 번역돼 나왔다. 예컨대 조선왕조실록이 번역되지 않았다면 <대장금> 같은 드라마나 <왕의 남자> 같은 영화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왕의> 대장금> 성호사설> 열하일기>
■민추의 출발은 4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5년 11월 6일 서울 동숭동 서울대 의대 강당. 박종화 박종홍 신석호 이병도 이해랑 최현배 김동리 홍이섭 이은상 조연현 김윤경 등 당시 학계와 문화계의 태산북두급 인사들이 한데 모였다. 민추 창립 총회 자리였다.
서양 문물이 판치는 풍토에서 잊혀져가는 한국 전통 학문과 문화를 되살리자는 취지로 발족한 것인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받게 된다. 쿠데타로 집권한 지 4년밖에 안 된 시점에서 '민족'과 '문화'는 정권의 정통성 획득에 딱 좋은 주제였기 때문이다.
■사실 민추라는 이름은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기 그지없다. 민족문화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추진이라는 말은 참 그렇다. 문화를 어떻게 추진(목표를 향하여 밀고 나아감)한단 말인가?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지 20여 년밖에 안 된 60년대에는 그게 다 뜻이 통하는 얘기였다.
서양 것만 좋은 줄 아니 우리 것을 강조하자는 것이고, 너무 뒤처져 있어 마음이 급하니 추진이라도 하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1년 뒤인 66년 11월 고전국역총서 제1집 <국역 연려실기술> 이 나온다. 국역>
■당시 민추 회장단의 일원인 소설가 월탄 박종화는 간행사에 이렇게 적었다. "이제, 고전을 한글로 번역할 만한 분들은 모두 다 세상을 떠났고, 혹간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눈같이 희어 있다.
이분들이 간 후에는 맡을 사람이 없다. 나라와 겨레의 이 큰 사업을 앞으로 누가 어떻게 할 것이냐. 아는 이는 초조한 우리들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 번역은 이가원 이병도, 교열은 성낙훈 이우성, 윤문은 조지훈 한갑수 조연현 등이 맡았다.
지금 이만한 대가들을 한 자리에 모신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민추라는 이름이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니 감회가 깊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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