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독일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세계여성지도자회의(GSW)의 폐막 리셉션은 김성주(51) 성주그룹 회장의 무대나 다름없었다. 세계 여성계의 지도급 인사 1,000여명이 참여한 이 GSW 행사의 후원사로서 자신이 경영하는 MCM 단독 무대를 마련해 패션쇼를 열며 피날레를 장식한 것. 회의에 참석했던 한 여성 인사는 김 회장에 대해 연신 “원더풀”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김 회장은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주목해야 할 여성 기업인 50명’에 선정됐고, 올해 5월에는 미국 아시안 아메리칸 연맹의 ‘올해의 아시안 상’을 국내 여성 기업인으로는 처음 수상했다. 2005년 독일의 고급 패션 브랜드인 MCM 본사를 인수해 패션계를 놀라게 했던 김 회장은, 이제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여성상을 알리며 그 자신이 한국의 대표 여성 브랜드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본업인 패션업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민사회에서의 폭넓은 행보로 세계가 주목하는 김 회장의 활동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세계여성지도자회의, 여성리더십위원회, 여성국제네트워크 등에 관여하며 여성계의 위상과 활동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그는 “여성의 창조성과 부드러움이 글로벌 사회를 더욱 향상시킬 수 있다”며 “더구나 소프트 산업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인구의 반인 여성의 재능을 활용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여성의 힘’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 이는 ‘좋은 집안에 시집가는 일’을 최고로 쳤던 가부장적 시장에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며 먼 길을 돌아온 그의 경험과도 맞닿아있다. 대성그룹의 막내딸이었지만 국제결혼 등으로 집안에서 내쫓기다시피 하며 밑바닥에서부터 일어선 일은 유명하다.
한국과 한국인을 글로벌 시민사회의 당당한 주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도 다부지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벗어나 일찍 세계무대를 뛰었던 그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한국 정부와 관료에 실망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세계 무대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는 여전히 찬밥신세. 더군다나 패션세계에서 한국의 브랜드 파워는 더욱 처참하다는 게 그의 평가다. 그는 “아프리카 케냐 정도의 이미지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 이름의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남아있다”는 그의 말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험난한 여정이지만 한국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의미있는 도전에 나섰다는 것이다. 20여년 전 미국 백화점 블루밍데일에서 일하며 패션업에 뛰어들었던 그는 한 단계 한단계씩 자신의 꿈을 현실시키고 있다. 구찌 등 명품 브랜드의 대행 판매에서 제품을 직접 만드는 라이센스 사업에 이어, MCM의 브랜드 인수까지 성공한 게 바로 그것. MCM은 지난해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밀라노에서 발표회를 가졌고 현재 서울을 비롯해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러시아 홍콩 등 8개국에 73개 매장을 열고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물론 이것도 그의 목표를 이루는 과정 중 하나다. 독일 영국 미국 한국 등을 누비며 글로벌 경영에 나서고 있는 그는 “수년 안에 한국 고유의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 패션 한국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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