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평론가 이권우 선생과 만나 나눈 대화 한 자락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편집자는 ‘한 사람 건너’로 존재한다”는 재미난 말을 했다. 사연인즉 이렇다. 작가의 출판기념회나 시상식 사진을 보면 으레 왼쪽부터 누구 누구 하는 설명이 붙는다.
그러다가 중간에 꼭 한 사람 건너 누구로 넘어간다. 모두 이름을 알만한 동료 작가나 유명 평론가들인데, 앞줄에 선 사람 중에 종내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끼어 있다는 것이다. 이 선생은 그 사람이 대개는 그 책을 편집했던 편집자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즉시 무릎을 쳤다. 출판기념회에서 편집자야말로 일등 공신이니 기념 사진의 앞 자리에 세우지 않을 수 없었을 터. 하지만 그는 기록 속에서는 늘 ‘한 사람 건너’의 익명적 존재일 뿐이다. 책이 그 손을 거치지 않고는 나올 수 없지만, 늘 책의 뒷편에서 익명으로만 존재하는 편집자의 운명.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다 보니 참 다양한 스타일의 편집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원고를 보낸 후 그들의 첫 반응을 기다리는 시간은 늘 조바심이 난다.
좋은 편집자와 일을 같이 하면 나도 내 글도 함께 업그레이드되는 것을 느낀다. 꼼꼼하게 문제점을 잡아내는 편집자는 고맙고 참 얄밉다. 하지만 나는 군말 없이 그들의 요구대로 원고를 고치고, 글을 가다듬는다. 그들에게 안 읽히면 일반 독자들에게는 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글의 첫 번째 독자다. 엉성하던 뼈대가 그 손길을 거치면서 아귀가 맞춰진다. 거친 표현과 군더더기들이 털려 나간다. 쓰면서도 찜찜했던 대목들이 어김없이 지적된다.
그래서 책을 펼치면 편집자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들과 옥신각신 했던 시간들도 함께. 그 기억이 선명할수록 독자들의 반응도 남달랐던 것 같다. 그저 ‘예예’만 하는 편집자에게는 왠지 정이 가지 않는다. 저자와 편집자, 뗄 수 없는 동지요 든든한 동반자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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