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빈 슈뢰딩거 지음ㆍ전대호 옮김 / 궁리 발행ㆍ320쪽ㆍ1만3,000원
생명현상의 기본단위인 유전물질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세포 속에 유전적 정보를 보존했다가 제 때 기능을 하는지 오리무중이었던 60년 전, 생명현상을 물리학과 화학의 언어로 기술할 수 있으리라는 주장은 얼마나 획기적이었던가.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1887~1961)가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 의 골자는 바로 이것이다. 생명이란>
<생명이란 무엇인가·정신과 물질> 은 슈뢰딩거의 강연을 정리한 두 편의 글과 그가 세상을 뜨기 몇 달 전 저술한 <내 삶의 스케치> 를 엮은 책이다. 내> 생명이란>
‘물리학자의 생물학 저서’는 뜬금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양자역학의 주창자였기에 가능했던 책이다. 슈뢰딩거의 논지는 풍성하지는 않지만 예리함으로 빛난다. 미시세계의 물질은 열운동에 민감하며, 본질적으로 무질서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생명체의 특성을 담고 있는 유전물질은 세대를 넘어 영속성을 간직할만큼 안정적이다.
그것은 유전자가 화학적으로 안정된 분자구조를 구성한다는 의미다. 슈뢰딩거는 유전자의 구조를 ‘비주기적 결정’이라고 규정하고, 통계물리학적인 접근법으로 생명현상을 규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망하고 있다.
1943년 아일랜드에서 한 대중강연을 정리한 이 책은 40년대 생물학 지식의 한계를 보인다. 그러나 ‘만물의 기초’를 추구하는 물리학자다운 시야는 1953년 DNA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한 프란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에게 실제 큰 영감을 주었고, 넓게 보아 분자생물학의 토대가 되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와는 달리 국내 초역인 <정신과 물질> 은 1956년 씌여진, 의식작용에 대한 철학적 조망이다. 양자역학은 인식론적 논쟁을 피하지 못한다. 정신과> 생명이란>
예를 들어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하면 관측대상인 빛은 마치 실험자의 의중을 알기라도 하듯 입자성을 보는 실험에선 입자로, 파동성을 보는 실험에선 파동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양자적 특성을 가장 깊이 고민하고 정립한 물리학자로서 슈뢰딩거가 바라보는 주관과 객관, 감각의 신비에 대한 스케치다. 슈뢰딩거가 보여주는 융합과학적 접근법은 여전히 의미가 있지만, 현대 생물학의 진보를 따로 덧붙이지 않은 점은 아쉽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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