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일 국책은행 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군살 빼기’ ‘효율적 기능 조정’ 등 당초의 문제 의식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도리어 산업은행이 선도 투자은행(IB)을 육성키로 해 민간 금융에서의 관(官) 역할이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이날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산업은행의 자회사인 대우증권을 당분간 팔지 않는다.
민간 금융과 겹쳐 비판을 받고 있는 산은의 투자은행(IB) 업무를 2009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전에 대우증권에 넘기고, 국내 IB 업계를 선도하는 증권사로 키울 계획이다. 대우증권 매각 여부는 2009년 자통법 시행 이후 4, 5년 뒤까지 판단을 유보했다.
국책은행과 민간 금융과의 마찰 해소를 위해 금융발전심의회 산하에 정책금융심의회를 신설해 조정을 맡긴다. 대신 산은에는 정책금융업무 역량을 모으기 위해 공공투자본부를 신설한다. 또 산은의 금융 자회사 중 한국인프라자산운용의 매각을 추진한다.
기업은행의 민영화도 중장기 계획으로 남겨졌다. 중소기업 정책금융 기능이 아직 긴요한 만큼 시장 여건을 봐가며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수출입은행에 대해서는 오히려 대외정책금융을 적극 수행하기 위한 전문조직과 인력 등 역량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재정 지원도 늘리기로 했다.
이 같은 개편 방안은 그간 감사원의 지적 등을 통해 제기된 문제 의식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다.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된 지 11개월, 사전 준비 단계까지 포함하면 2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준비를 했지만 ‘시늉’에 그쳤다는 평가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 산은에 대우증권 등 5개 자회사를 매각하고, 산은, 기은, 수은의 기능과 역할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이도 저도 아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단적인 예가 업무영역을 놓고 마찰을 빚어온 산은과 수은의 역할 조정이다. 개편안은 “일률적으로 규정할 경우 급변하는 대외환경에 효율적 대응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수은은 보다 정책적 조건에서, 산은은 보다 상업적 조건으로 지원한다”는 모호한 원칙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개편안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해당 국책은행들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산은 관계자는 “예상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고 했고, 수은측도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은도 “정부가 민영화의 큰 밑그림을 그려준 데 환영한다”고 했다. 개편안이 모든 국책은행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마련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조원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대우증권 매각 시기, 기은 민영화 일정 등을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8월 중순까지 논의를 마치고 확정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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