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강대국 지도자들의 활기찬 행보로 넘쳐난다. 그 중심엔 한국인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2014년 동계올림픽의 소치 유치를 이뤄낸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새로운 프랑스의 기초를 놓겠다는 프랑스 니콜라 세르코지 대통령, 왕실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줘 정치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가 있다. 이라크전 수렁에 빠진 미국을 대신해 세계사적 전환기의 맹주가 되겠다는 이들의 눈은 한결같이 낡은 이념 및 관행의 타파와 국가 경쟁력 극대화에 맞춰진다.
먼저 푸틴. 2000년 5월 집권해 내년 퇴임을 앞둔 그는 취임 초부터 독과점을 누리며 정치권력까지 위협하던 과두재벌(올리가르히)의 대수술을 단행해 지도력을 확보하고, ‘에너지 파시즘’으로 불리는 석유ㆍ가스 등의 자원 무기화로 연 7~8%에 달하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끌어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항하는 다원주의를 제창할 힘을 확보했으며 유럽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 등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소치가 기반시설 부족의 약점을 딛고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것도 대규모 물량공세를 펼 수 있는 경제력과 힘이 관계를 지배하는 ‘파워 폴리틱스’ 덕분일 것이다.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열강들
사르코지는 며칠 전 프랑수아 피용 총리의 의회연설을 통해 프랑스를 21세기형 국가로 현대화하는 첫번째 국정개혁안을 내놓았다. 줄거리는 크게 실업해소, 교육내실화, 정부혁신 등 세 갈래다. 생산력을 떨어뜨리고 국가 통합을 저해하는 암적 존재인 8%대의 실업률을 2012년까지 5%대로 낮추고, 이 기간에 50억 유로를 투입해 대학 자율권 확대 등 교육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재정지출 동결 및 공무원 감축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게 골자다.
프랑스 고유의 가치인 평등을 훼손하고 미국식 경쟁주의에 함몰된 정책이라는 반발도 적지 않으나 새 정부의 의지는 꽤 단단한 것 같다.
브라운 역시 취임 후 첫 의회연설에서 총리 권한의 대폭적 의회 이양과 역사상 첫 성문헌법 제정을 내걸었다. 출발점은 “수세기 동안 왕실의 이름 아래 총리 주도의 내각이 국민과 대의기관과의 협의를 외면했다”는 반성이다.
밀실결정의 대표적 사례로는 이라크전 참전이 꼽힌다. 이에 따라 전쟁 선포권, 성공회대주교 임명권, 의회 소집권, 조약 체결권, 판사 임명권 등 12개의 총리 권한이 의회로 이양될 예정이다. 아울러 불문법으로 지켜온 시민의 권리와 의무, 내각ㆍ의회ㆍ국민 사이의 권력 분점을 성문화하는 문제를 공론화하겠다는 제안도 있다.
반면 대서양 건너 미국에선 조지 부시 대통령의 선악 이분법적 믿음에 따른 잘못된 확신과 실정을 비판하는 지적이 줄을 잇는다. 가장 신랄한 비판은 “부시 대통령이 나치 독일에 단호하게 맞선 처칠을 정치적 모델로 삼았으나, 결과는 외교와 내정 모두 실패해 처칠에게 총리직을 넘겨준 체임벌린과 닮은 꼴이 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부시는 역사상 가장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는데, 정작 본인은 지금껏 추진해온 방향에 일말의 의심도 갖지 않는다고 한다.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 자신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100년 뒤 역사만이 내릴 수 있다는 투다.
■우리 '정권시장'엔 욕심만 가득
홍콩 반환 10주년을 맞아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지도력을 더욱 강화한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연금기록 분실 파문과 측근들의 잇단 낙마로 퇴진 일찌감치 퇴진압력에 시달리는 일본의 아베 총리는 또 다른 대조군이다.
이 같은 강대국 지도자들의 부침을 보면서 눈을 안으로 돌리면 갑갑증이 엄습한다. 5년 만에 정권이 매물로 나온 큰 시장이 열린 만큼, 이를 사거나 쟁취하려는 크고 작은 정치세력과 대선후보군의 진흙탕 다툼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큰 손들은 아전인수식의 입찰자격 시비로 날을 새우고, 작은 손들은 불투명한 어음을 남발하는 장면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저마다 장담하는 ‘5년 내 소득 3만불 선진국 진입’ 약속이 지켜질지, 아니면 단순한 입발림인지, 앞선 지도자들의 비전과 전략에 대비해 보면 안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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