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테러리스트를 만드는가’
‘9ㆍ11 테러’가 발생한 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우리는 빈곤과 싸운다”며 “왜냐하면 희망이야말로 테러에 대한 대답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부인 로라 여사는 “교육 받은 어린이들은 테러를 극복하는 가치들을 훨씬 잘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모두 ‘테러는 가난과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통념을 바탕으로 한 얘기들이다.
하지만 경제학자인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 같은 통념은 틀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난하거나 무지해서 테러에 나선다는 것은 근거 없는 잘못된 믿음”이라며 “비폭력적인 항의수단을 박탈당했을 때 반체제 인사들이 테러전술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혀 정치적 탄압이 테러를 불러오는 주된 이유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크루거 교수는 월스트리트 저널이 5일 인용, 보도한 연구에서 자신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크루거 교수가 모은 자료에 따르면 우선 자살폭탄공격에 나선 148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빈곤층 출신이 아닌 경우가 더 많았으며, 평균적인 팔레스타인인들 보다 고교 졸업비율이 더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129명의 헤즈볼라 순교자들 가운데도 못 살고 못 배운 사람보다는 상대적으로 잘 살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많았으며, 1980년대 활동했던 이스라엘 테러조직 ‘구시 에무님’ 조직원들의 구성도 비슷했다.
사회적 빈곤과 테러발생의 상관관계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지역의 경제상황이 악화했을 때라고 해서 테러가 증가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사회복지제도가 잘돼 있는 나라에서 테러가 많이 일어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요르단 모로코 파키스탄 터키 등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서구인을 겨냥한 이라크에서의 자살폭탄테러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비교적 잘 살고, 잘 배운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 국무부가 주요 테러사건으로 규정한 781건에 대한 분석결과에 따르면 이들 테러사건의 범인들 가운데 빈곤이나 사회적 불평등보다는 정치적 탄압이 자행되고 있는 국가 출신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나, 역시 정치적 동기가 크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크루거 교수는 “‘9ㆍ1 테러’ 범인들도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이었다”며 “가난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잘 살고 많이 배운 사람들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테러를 지원하거나 테러단체에 가담한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뉴욕=장인철 특파원 ic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