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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슬럼, 지구를 뒤덮다' 세계화의 음지, 슬럼이 우리 미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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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슬럼, 지구를 뒤덮다' 세계화의 음지, 슬럼이 우리 미래라면?

입력
2007.07.0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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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데이비스 지음ㆍ김정아 옮김 / 돌베개 발행ㆍ343쪽ㆍ1만5,000원

“슬럼, 준슬럼, 수퍼슬럼. 이것이 도시 진화의 결과”라는, 도시계획가 패트릭 게디스의 글귀로 문을 여는 이 사회과학서엔 묵시록적 정조가 짙다. 미국 UC어바인 교수인 저자는 20세기 전반 제국주의의 침탈을 받은 제3세계 도시 빈민들이 1970년대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겪고 있는 열악한 생존 조건을 까발린다.

저자는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의 도시에서 하층민의 비합법적 주거지대인 슬럼이 급속히 확장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원인을 산업 성장에 따른 이촌 향도에서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그는 일갈한다.

농촌 인구가 유입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도시에 일자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농촌 경제가 몰락했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1980, 90년대 심화된 제3세계의 채무 위기와 강요된 경제 구조조정이 슬럼 확대와 맞닿아있다는 진단이다.

유엔의 보수적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의 슬럼 인구는 10억 명 이상이다. 도시 주민 25%가 도시 면적 5%에 밀집돼 있다는 또 다른 통계는 슬럼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지역차는 있지만 슬럼 주민은 공통적으로 인구 과밀, 열악한 주거, 공공설비 부재 등의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슬럼이 개발 지역으로 편입될 때 생기는 이익은 다른 주머니로 흘러 든다.

남의 땅을 불법 점유해 슬럼을 지었던 ‘스쿼터’ 중 일부는 개발의 혜택을 입지만, 대부분의 이득은 지주, 사업가, 공무원 등 상류층의 몫이다. 이들 중엔 정부 보상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슬럼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다.

‘슬럼의 생태학’이라 이름 붙인 장에서 저자가 나열하는 빈민가 주거 환경은 아연하다. 라틴아메리카 하수의 90% 이상은 정화 처리 없이 하천에 버려진다. 2만8,000명이 2개의 화장실을 함께 쓰는 케냐 나이로비의 한 슬럼 구역엔 배설물을 비닐봉지에 담은 ‘스커드 미사일’이 지붕, 골목 곳곳으로 날아다닌다.

상수도 및 공공 화장실이 기업의 유망 사업으로 부상, 빈민을 상대로 ‘벼룩의 간을 빼먹는’ 행태가 버젓이 벌어진다. 슬럼의 최대 적인 화재는 부자의 방화일 때가 많다. 철거 명령을 기다리기 지루한 필리핀 마닐라의 지주들은 곧잘 등유에 빠뜨린 들쥐나 고양이에 불을 붙여 슬럼에 풀어놓는다.

식민지 해방 이후 집권한 엘리트의 무능과 부패, 재산권ㆍ생존권을 놓고 한 치의 양보도 거부하는 상류층의 행태에 슬럼 확대의 책임을 묻는 저자는 열악한 위생과 경제적 배제가 계속될 경우 인류의 미래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 경고한다.

입주민에 대한 배려 없는 ‘도시 정비 사업’으로 사라져간 달동네, 쪽방, 비닐하우촌 등을 떠올리며 우리에게 슬럼은 이미 지나간 역사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책 말미에 해설을 붙인 우석훈씨의 진단은 이렇다. “중산층의 아주 일부만 경제 엘리트로 편입되고 대부분은 하층민으로 분리되는 변화를 겪고 있다. 엘리트의 요새 주택은 이미 등장했고, 본격적인 슬럼이 등장할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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