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림 시인 모녀
“어머, 이게 그 유명한 안데르센의 ‘하늘을 나는 트렁크’ 인가요? 저랑 딸아이도 여행을 좋아하는데, 이 곳에 오니 안데르센과 함께 상상속의 여행을 하는 것 같아서 막 흥분되요.”
시인이자 사진작가이며 얼마 전 동시집도 펴낸 신현림씨가 딸 서윤(7)이와 함께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상상공간- 안데르센의 삶과 놀라운 이야기’전을 참관했습니다.
발랄한 파란색 ‘커플룩’을 차려 입은 모녀는 호기심 많은 인어공주들처럼 전시장을 누볐습니다. 상상력이야 말로 삶을 아름답게 가꿔주는 보석 같은 존재라고 믿는 시인과 그녀를 닮아 감수성이 뛰어난 딸이 직접 체험한 안데르센의 신기하고 환상적인 세상, 함께 가보실까요?
■동화는 쉼이다.
“이게 실제 안데르센의 사진인가요? 아, 사진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로군요. 어머, 이 사진은 몇 살 때인가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를 지은 루이스 캐롤은 동성애 성향이 강했다는데 안데르센도 그런가요?” 이상한>
신현림(45) 시인은 “별 기대 없이 왔다”더니 막상 유품과 함께 전시된 안데르센의 사진을 보자 전시안내원에게 질문공세를 퍼붓는다. 전시장에 오자마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껑충껑충 뛰던 딸 서윤(7)이는 엄마 손을 놓고 먼저 전시관으로 들어간 지 오래. 잠시 질문을 멈추고 아이를 찾던 시인의 눈에 전시장 내 ‘부시깃 통’ 섹션에서 금화, 은화 문지르기 체험에 몰두해 있는 아이가 잡힌다. 신 시인은 “아이가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해 아티스트로 키울 생각”이라며 연신 대견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봤다.
안내원이 “안데르센의 등단 데뷔작은 우리식으로 따지면 동시였다”며 이어지자 시인의 눈이 번쩍 빛난다.
“동시요? 그렇지, 역시 시를 아는 사람이라 이런 훌륭한 창조물을 낸거죠(웃음). 시는 당장 돈은 안돼도 마음에 위안을 주는 영혼의 보물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이 전시장은 참 행복한 공간인 것 같아요.”
“엄마, 나 동전 이렇게나 많이 새겼어.” 안데르센의 생애를 소개하는 전시물에 몰입해 있는 엄마와 달리 색다른 체험 도구가 신기하기만 한 서윤이가 밝게 웃으며 신시인의 팔에 매달렸다. 시인은 딸에게 환하게 웃어주며 “자연이 늘 곁에 있어 진실한 성찰이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 시대는 이런 인위적인 전시를 통해서라도 동화 속 환상 세계를 체험하는 기회가 필요한 것 같아요. 동화 속에 있다보니 정신이 편안하게 쉬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했다.
■동화는 여행이다.
안데르센은 ‘여행은 삶’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여행을 즐겼다. 그의 수많은 여행 경험은 200편이 넘는 동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이었다. 그의 유럽 여행 시기를 표현한 전시 섹션 ‘하늘을 나는 트렁크’에는 안데르센이 실제 여행 때 사용했던 트렁크가 전시돼 있다.
“서윤아 이 트렁크가 우리 트렁크보다 크니? 우리 지난 주에 터키 여행 갔었지?” “응, 8일간 갔다 왔어.”
여행은 통해 영감을 얻는다는 신시인은 안데르센과 자신의 또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한 후 목소리가 한 옥타브쯤 높아졌다. “저도 여행을 참 좋아해요. 안데르센도 역시 여행을 통한 끊임없는 자기 탐구, 호기심 속에서 영감을 얻어 좋은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군요. 사실 이 전시야말로 ‘안데르센과 함께 하는 여행’이 아닌가 싶네요. 그의 인생여정과 수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 말이죠. 아, 시상이 저절로 떠오를 것 같아요.”
■동화는 사랑을 꿈꾸게 한다.
“어머, 진짜 잔디 같다!” 편하게 앉아 동화를 들을 수 있게 인조 잔디로 장식된 동화구연 코너에 온 신시인은 이제 오히려 딸보다 더 들떠 있는 분위기다. 푸른 잔디 위에 다리를 쭉 뻗고 편하게 앉아 동화구연을 듣던 시인이 느닷없이 한마디 던진다. “아이와 오는 것도 좋지만 애인이랑 와도 좋을 것 같아요.”
“메마른 가슴 속 눈물을 되찾을 수 있는 향수와 추억의 공간이니까요. 어느 새 우리 삶에서 사라져 버린 사랑과 인생의 여백을 되찾게 해주는 느낌이에요.” 어느새 시인 옆으로 다가와 있던 딸이 “엄마, 새 아빠는 꼭 내가 고를거야”라며 오른손을 번쩍 들어 보인다. 시인의 얼굴에 잔잔한 홍조가 든다.
최근 골치 아픈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신 시인은 안데르센 특별전이 여행 만큼이나 인생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감탄했다. 매일 3차례 열리는 동화구연 코너로 뛰어가는 서윤양을 바라 보며 그가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다음 약속을 취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오래 이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여기 오면 아이에게 굳이 책 읽으라고 잔소리할 필요 없겠어요. 안데르센의 생애를 봤으니 그의 책도 자연스럽게 궁奮末?것 아니겠어요. 요즘 상상력이 세상을 바꾼다고들 하는데, 이런 곳에서 아이가 맘껏 뛰놀게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시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윤이가 깜찍하게 말을 받는다.
“그럼, 우리 조금 더 있다가 갈꺼지?” 안데르센 전시는 다음달 15일까지 계속된다.
■ 신현림 시인은 아주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상명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1990년 <현대시학> 으로 등단했으며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등의 시집을 발간했다. 세기말> 지루한> 현대시학>
시집 뿐만 아니라 사진집, 미술 관련 에세이도 발간한 멀티 아티스트. 2005년에는 이혼 후 홀로 딸 서윤양을 키우는 자신의 일상을 진솔하게 담은 에세이 <싱글맘 스토리> 를 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싱글맘>
지난 3월에 내놓은 동시집 <초코파이 자전거> 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2/4분기 아동ㆍ청소년 문학 부문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는 등 최근에는 아동물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요즘은 치유성장에세이와 번역서를 출간 준비 중이다. 초코파이>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 상상력 날개를 펴요
상상력과 창의력에 집중하는 사교육 트렌드는 사실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이미 논술능력을 비중 있게 평가하는 대학입학 시험제도가 뿌리내린 10여년 전부터 붐은 시작됐다. 하지만 오랜 기간 엄마들이 상상력, 창의력 교육에 꾸준히 눈길을 두는 이유는 결국 대한민국 ‘상위 1%’ 에 드는 인재로 자라는 아이들의 경쟁력 차이는 수능 성적이 아닌 ‘기발함’ 에 있기 때문이다.
경기 분당에 살고 있는 주부 유명주(40)씨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의 스케줄 관리에 아침 시간을 전부 소비한다. 방과후 이어질 5개의 학원수업 준비를 위해서다. 교과과목 외에 잡아둔 수업이 바로 상상력과 창의력 증진을 목표로 한 논술, 철학, 독서 교실이다.
유씨는 “생각하는 방법이 남들과 달라야 특별한 미래를 일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이의 잠재력을 끌어 올려주는 창의력 관련 수업에 엄마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대부분 엄마들이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하면 오직 입시를 목표에 두고 사교육을 진행하는데 긴 안목으로 보면 창의력 계발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현지(7ㆍ경기 수원시)양은 4살 무렵까지 엄마와 한시도 떨어지지 못했고 동화책을 볼 때나 일상적인 놀이를 할 때 ‘나타났다’라는 말만 나와도 울음보를 터뜨릴 정도로 사회성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후 창의력 교실을 다니면서 아이는 변하기 시작했다. 소그룹을 이루고 친구들과 함께 책을 보며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집단과 스킨십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미라 독서논술업체 ‘한우리’ 객원연구원은 “상상력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는 아이의 연령층이 점차 내려가고 있고, 영ㆍ유아를 둔 부모들의 전화상담이 늘고 있다”며 “독서를 이용한 교육이 상상력 뿐 아니라 이해력, 사고력을 높여 이후 학습에 밑바탕이 된다는 데 동의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말했다.
어린이철학연구소 최덕수 부장은 “독서를 비롯해 철학적 사고능력을 높이는 창의력 교육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고있는 추세”라며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키우고 고차원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향후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상력과 창의력에 포커스를 맞춘 사교육은 독서교실, 철학교실, 미술교실 및 각종 예ㆍ체능 교실을 통해 다양하게 이뤄진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 트렌드가 최선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와이즈 멘토 허진호 팀장은 “사실 창의력과 상상력은 타고 나는 부분이 많아 교육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며 “사실 요즘 엄마들은 논술학원이나 미술학원에서의 교육이 얼마나 상상력을 키워주냐를 먼저 생각하기 보다, 나중 특목고나 영재학교에 가는데 어떤 도움이 될 지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상상력 교육 수단 중 가장 유익한 도구로 평가 받는 것은 아무래도 독서이다.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경험이 부족하고 세상을 볼 기회가 적기 때문에 책으로 얻는 간접경험의 의미는 상당히 커 ‘독서는 상상력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김도연 아이북랜드 연구실장은 “어린 아이는 이성적 판단이 힘들어 무생물, 인형 등 주변 도구를 다 살아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며 상상과 현실을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다”며 “때문에 동화를 접하면 쉽게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하고 현실로 인식하는 등 공상의 나래를 펴게 된다”고 말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 미스코리아 김수현 "어린이의 마음으로 산그가 눈물겹도록 부럽다"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내게 ‘미스코리아’ 타이틀은 축복이다. 같은 길을 걷는 또래 친구들이 갖기 힘든 다양하고도 특별한 경험들은 하나하나가 소중한 글쓰기의 재료들이다. 하지만 글감이 쌓여갈수록 정작 펜을 잡기는 힘들어졌다. ‘겉 모습이 아닌,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싶은데….’ 그럴 때 안데르센을 만났다.
한국일보의 안데르센전(展) 준비팀에 합류해 5월25일 그의 조국 덴마크를 찾았다. 직항 편이 없는 탓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비행기를 다시 갈아타는 12시간의 긴 여정 끝에 코펜하겐에 도착한 때는 한 밤. 그러나 일찍 시작된 백야로 시내는 환하게 밝았다. 시간이 멈춘 동화 나라에 발을 디딘 느낌이었다.
이튿날 코펜하겐에서 차로 1시간30분쯤 걸려 닿은 안데르센의 고향 오덴세는 온통 파스텔톤의 빛깔이었다. 서너 명만 서도 어깨가 서로 맞닿을 만큼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조그맣고 예쁜 집들이 별처럼 늘어섰다. 어느 집이건 문을 두드리면 금세라도 도깨비며 난쟁이, 공주와 왕자님들이 튀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그가 즉흥시를 읊었던 대성당 너머 오래된 오두막 안에는 구두 수선공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구불구불한 벽돌 길에는 정신병을 앓았던 할아버지의 발자국이 보였다.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너른 들판에서는 어린 안데르센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다정한 미소가 떠올려졌다.
작은 강에서는 소년 안데르센이 띄웠을 작은 종이배가, 강가 산딸기 곁으론 손 빨래하던 어머니의 모습도 그려졌다. 엄마 오리를 따라 새끼들이 정겹게 산책하는 모습 위로 백조가 될 꿈을 꾸고있는 ‘미운 오리새끼’ 안데르센의 맑은 얼굴이 겹쳐졌다. 오덴세 마을을 거니는 동안 내내 안데르센은 그렇게 그림자처럼 따라 붙었다. 가난한 삶에도 순수한 영혼을 잃지 않았던 소년 안데르센이.
어쩌면 그는 가난했기 때문에 오히려 결핍되지 않은 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그의 가난은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 반드시 머물러야 했던 정거장과도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덴세 박물관에서는 안데르센이 즐겨 한 종이 오리기(페이퍼 커팅) 작품,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다시피 한 멋스러운 모자,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흔적이 담긴 글, 평생을 함께 한 여행가방 등의 유품을 통해 보다 가깝게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오래 발길을 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한 귀퉁이에 난데없이 놓인, 용도를 알 수 없는 낡은 밧줄이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의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안데르센이 단단히 붙잡고 있던 밧줄로 보였다. 희망을 놓지 않고, 그럼으로써 끝내 사랑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으리. 세계인들에게 두고두고 읽힐 그의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그런 고통과 절망과의 싸움을 극복하고서야 이뤄진 것이었다.
우리 어른들은 모두 알비노(백화ㆍ白化) 현상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색깔의 동심을 잃고 점차 차가운 잿빛으로 변해가는. 어쩌면 성장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죽을 때까지 호기심과 모험심 같은 어린이의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또 그의 삶이 눈물겹도록 부럽다.
덴마크에서의 마지막 날, 이런 마음이 와 닿은 것일까. 코펜하겐 항구의 랑겔리니 공원에서 문득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기타와 아코디언 선율에 실린 아리랑이었다. 그의 동화 ‘인어공주’ 동상이 서있는 바닷가에서 울려 퍼지는 아리랑이라니. 그 가락에 인어공주의 꼬리가 살풋 춤을 추고, 바다가 울렁였다.
■ 꿈을 펼쳐요 북토킹
<안데르센전> 안에 또 다른 상상의 공간이 펼쳐졌다. 이번 주말부터 시작되는 ‘아이북랜드와 함께 하는 재미있는 책 읽기’다. 북토킹을 통해 동화에 대한 어린이들의 이해를 높이고 상상력을 키우는 이벤트. 매 주말 오후 2, 4시에 정기적으로 열린다. 안데르센전>
4일 시범적으로 열린 북토킹 행사에는 분당어린이집 어린이 30여명이 참석, 똘망똘망한 눈을 굴려가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이북랜드 이야기도둑 도서관에서 초청한 김지숙 독서지도 선생님이 동화작가 안데르센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자 “안데르센 할아버지는 대머리다” “엄지공주 크기가 주먹만 하다”던 아이들의 수다는 이내 잦아들었다.
선생님: 오늘 여러분들에게 들려줄 얘기는 <미운 오리새끼> 와 <백조 왕자> 예요. 잘 듣고 선생님이 내는 퀴즈를 다 맞추면 짱구춤을 춰 줄게요. 백조> 미운>
(아이들이 이구동성 ‘예’ 소리를 내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낸다. 오리 알이 갈라지고, 새끼 오리들이 부화하며 이야기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동화의 세계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인솔하고 온 선생님들은 아련한 기억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두 편의 동화 구연이 끝나고 퀴즈시간이 되자 선생님의 짱구춤을 보기 위한 아이들의 도전이 시작됐다.)
선생님: 미운 아기 오리에게 같이 놀자고 말한 동물은 누구일까요.
아이들: 거위요.
선생님: 미운 아기 오리는 결국 무엇이 되었죠.
아이들: 백조요.
이제 선생님의 질문이 좀 복잡해진다.
선생님: 왜 백조 알이 오리 알들 속에 섞여 들어갔을까요.
(아이들 손이 머릿수 만큼이나 많이 올라간다. 한 아이가 거의 일어서다시피 손을 높이 올린다. 선생님의 선택을 받은 아이가 일어선다.)
아이: 엄마 백조가 둥지를 잘못 알고 오리 둥지에 알을 낳았어요.
다른 아이: 둥지 밖에 낳은 알이 데굴데굴 굴러서 오리 둥지로 들어갔어요.
선생님: 그래요. 그럼 오리 언니들은 왜 미운 오리새끼를 미워했을까요?
다른 아이: 새까맣고 못 생겨서요.
선생님: 다른 친구들도 말해볼까요.
(손을 드는 아이는 찾아볼 수 없고, 갑자기 침묵이 찾아왔다. 선생님이 서둘러 분위기 살리기에 나섰다.)
선생님: 친구가 잘 말해줬어요. 못 생긴 친구가 있다고 해도 여러분들은 미워하면 안돼요.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들이에요. 엄마 아빠에게 가장 귀한 보물이기도 하죠.
몇 가지 질문과 짧은 대답이 오가고, 북토킹은 막을 내렸다. 이제부터는 기자와 독서지도 선생님과의 질의 응답 순서.
기자: 북토킹의 좋은 점이 뭡니까.
선생님: 글씨를 깨우친 어린이라도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파악하기보다 글자 자체만 읽기 쉬워요. 책에 나왔던 주인공의 행동을 따라하고, 책 내용에 대해 부모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린이들이 책을 더 좋아하고, 더 잘 이해할 수 있죠.
기자: 아이가 책 내용을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는 게 북토킹인가요.
선생님: 책 내용을 잘 알았는지 확인하려고만 하는 행위는 가장 좋지 않은 대화법이죠. 예를 들어 ‘엄지공주에 누가 나왔지?’라고 물으면 어린이는 흔히 제비, 꽃 얘기부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주인공, 핵심이 무엇인지 부터 얘기하지 않고 이야기의 테두리부터 얘기합니다. 이 때 아이의 얘기를 듣지 않고 부모가 결론을 단번에 내려주면 아이는 얘기할 기회를 잃게 되죠.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부모가 확인하려고 드는 행위에 대해 실증을 느끼고 책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됩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 안데르센 전시회 100배 즐기기
‘아는 만큼 보인다.’
유홍문 문화재청장이 자신의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 인용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다. 모든 문화ㆍ예술 분야가 공히 그렇겠지만 그 중에서도 ‘상상공간-안데르센의 삶과 놀라운 이야기’전 만큼 이 말이 맞아 떨어지는 전시회도 없다.
‘상상공간-안데르센의 삶과 놀라운 이야기’ 전은 한국 관람객들에게는 아직은 낯선 첨단 복합 문화 전시다. 미국의 ‘자연사 박물관’ ‘빌 클린턴 대통령 기념 도서관’ 등을 설계한 미국의 유명한 디자이너 랄프 아펠바움은 25점의 안데르센 유품과 그가 쓴 동화, 그의 일대기를 한 자리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장을 꾸몄다.
전시 전 내용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동화보다 더 재미있고 놀라운 안데르센의 삶과 그가 쓴 작품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랄프 아펠바움이 전시장을 안데르센의 삶을 6단계로 나눠 시기별로 가장 잘 맞는 동화 2편과 그에 해당하는 유품, 체험공간을 배치했기 때문.
1805년 덴마크 오덴세에서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안데르센은 11세 때 아버지를 잃었다. 남의 집 빨래를 해주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의 어머니는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꿈을 잃지 않았다. 부잣집을 전전하며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종이를 오려주며, 이야기를 들려준 대가로 모은 13 딜럭스를 가지고 14세 때 코펜하겐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매부리코와 구부정한 어깨 195cm나 되는 큰 키의 외모를 지닌 소년은 자신의 외모는 아랑곳하지 않고 덴마크 왕립 극장의 배우를 꿈꿨다.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지만 매일 밥값과 숙박비 걱정을 하면서도 소년은 꿈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작가로서의 명성과 부를 얻게 됐다. 작가로서 성공한 안데르센은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신의 자서전 을 쓰게 된다. 바로 괴테의 ‘청춘의 기록’과 함께 세계 5대 자서전으로 불리는 ‘내 인생의 동화’가 그것.
안데르센의 동화는 이런 안데르센의 삶을 이해하면 한층 더 재미있어 진다. 안데르센 자신이 성공한 ‘미운 오리새끼’이며 사랑에 상처받은 ‘인어공주’였고, 역경을 이겨낸 ‘꿋꿋한 장난감 병정’인 동시에 불쌍한 ‘성냥 팔이 소녀’이기도 했기 때문.
안데르센의 삶을 유년기, 젊은 예술가, 여행, 우정과 사랑, 고독, 명성의 6단계로 나눈 전시장에는 각 시기별로 ‘미운 오리새끼’ ‘부싯깃 통’ ‘하늘을 나는 트렁크’ ‘그림자’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의 작품의 영상과 텍스트, 체험과 상징물이 준비되어 있다. 또 각 시기에 해당하는 안데르센의 유품도 살펴볼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안데르센의 삶과 동화 속에 깊이 빠져 들수록 ‘동전 문지르기’ ‘여행용 스탬프 찍기’ ‘페이퍼 커팅’ ‘새로운 캐릭터 만들어보기’ ‘안데르센에게 편지쓰기’ ‘천사 점토로 캐릭터 만들어보기’ ‘동화 구연’ 등의 체험들은 재미를 더해준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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