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었다. 굳은 표정 속에서도 애써 미소를 머금으려 했다. 평창 유치가 확정될 경우 예정했던 대국민 기자회견이나 축하 리셉션 등 모든 일정도 당연히 취소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발표 이후 노 대통령은 관계자들과 교민 등을 찾아가 위로한 게 공식 일정의 전부였다.
노 대통령은 4일 오후(한국시간 5일 아침) 권양숙 여사와 함께 과테말라시티 시내 숙소 호텔에서 TV를 통해 발표 장면을 지켜본 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 상황실이 설치된 인근 홀리데이인 호텔로 갔다.
호텔 앞에는 현지 교민과 국내에서 온 서포터스 등 300여명이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며 눈물로 노 대통령 내외를 맞았다. 이 중 한 명은 무릎을 꿇고 "죄송합니다"라고 말했고 노 대통령은 그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호텔 3층에 마련된 유치위 상황실에 들러 관계자 30여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수고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유치위 관계자들과 서포터스들이 계속 눈물을 흘리자 함께 온 권 여사도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공식 논평을 통해 "모두가 자기 영역에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 아쉽다. 강원도민, 과테말라 교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밝혔다.
평창의 실패는 노 대통령에게도 뼈아프다. 단순히 집권 기간 내에 두 번의 평창 유치 실패라든지, '발품 득표전'이 무위로 돌아갔다든지 하는 것 이상으로 상실감이 크다.
올림픽 유치는 노 대통령이 임기 말 대선가도에서 든든한 원군 역할을 할 것으로도 판단됐기 때문이다. 외치의 성공이 자연스레 내치에도 연결될 것이란 기대가 빗나가게 된 점이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올림픽 유치 실패와 더불어 무척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과테말라시티=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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