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뇌물 스캔들이 터지자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윤리규정을 강화했다. IOC위원들의 올림픽 유치후보도시 방문을 금지시킨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IOC는 이번 과테말라 총회 기간에도 나름대로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IOC 위원들과의 만남을 총회 본부호텔인 인터컨티넨탈 호텔로 제한, 러시아 소치가 야심차게 준비한 ‘아이스 링크쇼’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그러나 IOC는 정작 가장 중요한 개최지 투표에서 상대의 로비와 국가별 이해 관계에 따라 표를 행사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투표 직전 실시된 프레젠테이션에서 평창은 꿈의 실현, 아시아 지역에서의 동계스포츠 확산,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올림픽을 통한 평화의 구현을 앞세워 IOC위원들에게 이성적, 감성적으로 호소했다. 평창의 프레젠테이션 후 외신 기자들은 “원더풀”을 연발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평창은 지난 달 발표된 IOC 실사평가단 보고서에도 3개 도시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평창의 명분과 진정성은 러시아의 정치 및 경제적 공세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IOC 위원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면에서 유치활동을 주도한 소치를 택했다.
갖가지 음모로 얼룩졌던 이번 유치전에서는 러시아의 거대가스업체 가즈프롬이 아프리카와 남미에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2차 투표에서 가스 공급권을 앞세운 러시아의 유럽표 싹쓸이와 2일 열린 미ㆍ러 정상회담이 러시아의 역전극을 합작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제기했다.
러시아가 6월24일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발칸 에너지 정상회담에서 풍부한 에너지를 무기로 주변국에 으름장을 놓았을 것이라는 것이고, 미ㆍ러 정상회담에서는 미사일방어(MD) 체제 문제로 꼬인 양국 관계 완화를 내세워 미국의 지지를 얻어 냈을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평창유치위의 한 관계자는 “이번 투표는 올림픽 이념과 정신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며 “객관적으로 소치는 경기장 시설이 전무한 상황에서 환경문제까지 크게 문제되고 있는데 어떻게 개최지로 결정될 수 있느냐”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알프레트 구젠바워 오스트리아 총리도 1차 투표에서 탈락한 후 “이번 경쟁이 국력과 자금력에 관한 것이었다면 잘츠부르크는 경쟁력이 없었다. IOC의 이번 결정은 스포츠와 올림픽 운동에도 좋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미국 NBC 방송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소치가 2014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내자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위원장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김정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은 이날 발표장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사마란치 전 위원장을 보고 불길한 예감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소치가 개최지로 결정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번 유치전은 신뢰(Confidence)와 인간적인 요소(Human factor)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자크 로게 현 위원장의 말이 새삼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과테말라시티=이승택 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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