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2분의 프레젠테이션에 승부수를 던진다.’
운명의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5일 오전(한국시간) 과테말라에서 평창(한국)과 소치(러시아), 찰츠부르크(오스트리아) 가운데 2014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장소가 가려진다.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IOC)인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이 회장은 4일 새벽(한국시간)까지 IOC위원들의 공식 숙소인 과테말라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IOC위원들을 맨투맨으로 접촉하면서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YES! 평창”을 이끌어낼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가다듬었다.
이 회장은 5일 새벽 개최지 결정 투표에 앞서 열리는 1시간짜리 한국측 프레젠테이션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마지막 주자(8번째)로 등단한다. 이 회장은 2분간의 영어연설을 통해 한 표를 호소할 예정이다. 평창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켜 20~30%로 추정되는 IOC위원들의 부동표를 사로잡을 절호의 기회다. 이 회장이 대외적으로 연설하는 자체가, 그 것도 영어로 하는 것은 평생 처음이라고 한다.
사실 이 회장은 지난 4년간 누구보다도 평창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2003년 체코 프라하 IOC총회에서 캐나다 밴쿠버에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의 고배를 마신 것까지 포함하면, 무려 6년(2002년부터 유치활동 전개)이나 몸을 던졌다.
올해는 지난 2월 IOC실사단이 방한했을 때 직접 평창으로 달려가 스키를 타보며 눈 상태를 점검했고, 유럽 아프리카 중국 등을 잇따라 찾아 표밭을 다졌다. 10표 안팎으로 추정되는 중남미 부동표를 잡기 위해 지난달 중순부터 브라질 등 6개국을 쉬지 않고 순회하는 강행군도 펼쳤다.
삼성이 강원도 연고기업도 아닌데, 이 회장은 왜 이토록 열심일까. 개인적으로 스포츠 애호가인 점도 이유일 수 있다. 올림픽 공식 스폰서인 삼성그룹의 마케팅과 이미지 향상 차원일 수도 있다. 2003년 프라하 패배에서 상처 난 자존심도 개입됐을 것이다. IOC위원으로서 의무감도 작용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 회장에게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는 중국과 일본에 낀 우리의 샌드위치 신세를 극복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그는 3일 “동계 올림픽이 유치되면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 3만달러 시대를 여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으로 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최대기업의 총수를 넘어 사회ㆍ국가적으로 기여하는 삼성의 이미지를 만들고픈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올해는 회장 취임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로의 후계구도를 생각한다면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경제인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평창 유치에 성공할 경우 그는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88년 서울 올림픽 유치를 따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비견되는 1등 공신으로 평가받을 것이 확실하다. 한국의 올림픽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하지만 결전을 하루 앞둔 4일 새벽 현재(한국시간) 판세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 회장은 “평생 사업을 하면서 여러 예측을 해왔는데 이번 만큼 예측하기 힘든 경우가 없었다”며 “방심하지 말고 긴장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날 마지막 드레스 리허설을 했다. 삼성관계자는 “평화의 올림픽, 최첨단 정보기술(IT)올림픽, 한국민의 뜨거운 환대를 받는 올림픽이 될 것이라는 데 연설의 초점을 둘 것”이라며 “프레젼테이션의 화룡정점을 찍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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