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4일 내놓은 새 대북 정책인 '한반도 평화비전'은 기존 대북 정책과 당론 등에서 일관되게 고수해 온'비핵화'전제 조건을 일부 완화시켰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없다"는 이전 입장에서 한걸음 물러 선 것이다. 평화 비전에 담긴 ▦경제 공동체 형성 ▦통행ㆍ통신 협력체제 기반 구축 ▦인도적 협력 지원 등의 실천 방안은 북핵 포기 여부와 무관하게 추진한다는 게 한나라당의 설명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비핵화는 비핵화대로 추진하되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두 가지 트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도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해 유지 발전돼야 할 사업"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평화협정 체결 추진'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 지원' 등은 비핵화 전제를 분명히 달았다.
상호주의 원칙도 앞으로는 유연하게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정형근 당 평화통일특위 위원장은 "상호주의 원칙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아무 일도 못한다"며 "북한 극빈계층에 대한 연간 15만톤의 쌀 무상지원 등은 상호주의의 예외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북 정책엔 이전 한나라당 대북 정책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라고 할 만한 내용도 다수 포함됐다. "비핵화ㆍ평화 정착을 위해 필요하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남북정상회담도 개최할 수 있다"는 입장이 대표적이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이 송환에 나설 경우 현금 또는 현물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제안도 담겼다.
한나라당의 전향적 대북 정책 수정은 대선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예고돼 있었다. 2ㆍ13합의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ㆍ안보 지형이 급격한 해빙 무드를 맞고 있는 만큼 한나라당에 덧씌워진 냉전ㆍ 수구 이미지를 하루 빨리 지워내야 한다는 당 안팎 요구가 많았다. 또 범여권의 남북정상회담 추진 등 북한발 변수가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전략적 고려도 반영됐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에 대해 당내에서도 고개를 갸웃대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당장 보수 성향 의원들의 반발이 나왔다. 김용갑 의원은 "한나라당은 한나라당 다워야 하는데 너무 갑자기 변하면 신뢰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경선후보 측은 일단 환영을 표시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 진수희 대변인은 "시대 변화에 맞는 적절한 대북 정책이라고 본다"며 반겼다.
박근혜 전 대표 측 유승민 의원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북지원과 개방 정책은 박 전 대표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대체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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