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권이 들어선 영국과 프랑스의 개혁작업이 거침없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각각 좌파와 우파로 대척점에 있지만 정책의 지향점이 국가 경쟁력과 투명성 제고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경제발전 없는 이데올로기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고든 브라운 신임 영국총리와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는 3일 동시에 의회에서 국정운영 방안을 발표했다.
■ 영국, 의회를 중심으로 책임정치 도모
브라운 총리는 이날 의회에서 취임 후 첫 연설을 통해 총리 권한의 대폭적인 의회 이양과 함께 영국 역사상 첫 성문헌법 제정 등 헌법개정 방침을 밝혔다. 이날 연설은 브라운 총리가 영국을 이끌 청사진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브라운 총리가 내건 국정 슬로건은 ‘정치의 신뢰회복과 국민의 권리ㆍ책임 제고’. 그는 “수세기 동안 총리를 포함한 내각은 국민 및 국민이 선출한 대표와의 협의를 생략하고 왕실의 이름아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다”고 반성했다.
전임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라크전 참전 등 주요 사안을 의회나 내각을 거치지 않고 ‘밀실 논의’를 통해 밀어 붙인 데 대한 비판인 것으로 분석된다.
의회에 넘길 총리 권한에는 의회 동의 없이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권리를 비롯해 영국 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 임명권, 의회소집권, 의회 결의 없는 조약체결권, 판사임명권 등 12개가 포함됐다.
또 테러위협에 적극 대처하기 위한 국가안보이사회(NSC) 신설 및 검찰총장 등 주요인사에 대한 미국식 인사청문회 도입, 선거연령을 현 18세에서 16세로 낮추는 방안도 제시됐다.
가장 큰 논란을 불어 일으킬 대목은 헌법개정이다. 영국의 헌법은 판례와 국제협약, 의회합의사항, 국왕대권 등으로 구성된 불문법이다. 브라운 총리는 “시민의 권리와 의무, 정부와 의회와 국민 사이의 권력 균형을 성문화할 가치가 있다”며 “성문헌법을 위한 토론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국가 경쟁력에 올인하는 프랑스
취임 2개월에 접어든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당초 우려됐던 ‘불도저’의 이미지를 버리고 통합의 정치력을 발휘, 갈등의 소지가 많은 교육개혁을 원만히 추진하는 등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피용 총리가 이날 첫 의회 연설을 통해 2012년까지 실업률을 5%로 낮추는 등 프랑스를 21세기형 국가로 현대화하려는 국정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약속한 국가 개혁의 구체적 실천 방안들을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피용 총리는 “대규모 실업은 생산력 저하와 국가 사기 및 통합을 저해하고 극단주의를 키우는 암적인 존재”라면서 “침체한 경제를 활성화해 실업률을 현재의 8.1%에서 5년 후에는 5%로 끌어내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업률 저하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피용 총리는 이와 함께 2008년부터 정부지출 규모를 동결하고, 퇴직하는 공무원의 절반을 충원하지 않음으로써 ‘작은 정부’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또 2012년까지 50억유로를 투입해 대학 현대화를 추진하고, 경쟁력 제고를 위해 대학에 더 많은 자율권을 주겠다는 방침을 거듭 강조했다.
소수를 끌어안으려는 통합노력도 빠지지 않았다. 소수정당의 의회 내 입지 강화를 위해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무슬림 등 이민계 주민 밀집지역인 저소득층 구역의 학교에 지원을 강화하고 이곳 젊은이들에 대한 직업훈련과 취업 지원을 약속했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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