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영화제. 하루가 멀다고 이 땅에 영화제가 열린다. 바야흐로 영화제 천국이다… 목표도 불분명하고 뚜렷한 차별성도 없는 우리의 국제영화제들. 전주가 궁리하다 못해 ‘대안영화제’라고 했지만 그것이 부산이나 부천과 얼마나 다를지 알 수 없다. 외국 유명작품, 재미있는 영화, 독특한 영화를 가져와 상영하고 관객이 얼마였다고 자랑하고 국민들에게 멋진 잔치를 마련해주었다고 생색내는 영화제.’
8년 전 얘기다. 그런데 지금 이 이야기를 단어 몇 개 고쳐 다시 해야 한다. 예상 못한 일이다. 그래도 그때는 이해가 됐다. 변변한 국제영화제 하나 없는 이 땅에 비록 슈퍼마켓식 축제에 불과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해 대성공을 거둔 후였으니까. 문화혜택의 지역적 균형, 영화산업의 자극이라는 나름대로 의미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크고 작은 국제영화제가 40여개. 여기에 국내테마영화제, 극장의 기획영화제까지 합치면 지금 한국에서 영화제는 100여개가 넘는다. 그야말로 매일 영화잔치판이다. 이들의 목적은 크게 하나다. 다양한 예술영화, 특별한 주제나 장르, 지역의 영화를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이른바 ‘영화상영의 다양성’.
‘지방단치단체(장)의 생색내기’란 속셈은 접어두고 이 부분만 놓고 보더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우선은 차별화의 문제다. 디지털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열리는 영화제가 도대체 몇 개이며, 결국은 같은 주제인 청소년과 가족이란 이름의 영화제는 또 몇 개인가. 그러다 보니 작품의 중복, 수준이하의 작품까지 영화제에서 버젓이 상영된다. 영화상영으로 차별화가 어려우니 온갖 이벤트, 부대행사로 요란을 떤다.
‘상영의 다양성’을 위해서란 주장도 이젠 설득력이 없다. 독립ㆍ예술전용관이 여러 개 생겼고, 예술영화만을 수입해 자기 극장에서 장기 상영하는 수입배급사도 생겼다. 멀티플렉스조차 나름대로 기획력을 발휘해 예술영화를 상영한다. ‘난개발’하듯 수 억원에서 수 십억원으로 영화가 마치 ‘문화의 전부’인양 떠드는 것도 지겹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근 국제영화제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그것도 서울 한곳에서 집중적으로.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이 20일부터 시작되고, 10월 18일에는 ‘서울가족영상축제’ , 그리고 이어 25일부터 11월2일까지 서울 중구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여기에 극장들이 뭉쳐 새로 만든 ‘넥스트 플러스 여름영화축제’도 7월19일부터 한달 동안 열린다. 모두 명분은 그럴듯하다. 최첨단 디지털영화, 오늘의 가족, 세계 영화적 전통발견 등.
이 영화제 집행위원장이나 운영위원장을 맡은, 경험이 많아 ‘영화제 만들기 전문가’가 된 그들은 이전 영화제들이 실망스럽다며 아직도 영화제가 더 있어야 한다고 떠든다. 일부러 돈 들여 멀리 프랑스 칸에까지 가서 기자회견을 하며 새로운 영화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한번 물어보자.
이 영화제들이 부천국제영화제, 전주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등과 얼마나 다른지. 더구나 충무로가 어떤 곳인가. 한국영화의 메카가 아닌가. 그런데서 외국영화 잔치판을 벌이겠단다. 그러니 내가 아는 영화단체 대표 두 분도 “영 내키지 않아서”
“한국영화가 이 지경인데 잔치는 무슨”하면서 영화제 참여를 거부하지 않았는가.
무분별한 과잉투자와 중복제작, 그에 따른 거품의 후유증을 혹독하게 앓고 있는 한국영화계. 과잉과 중복, 거품과 낭비는 영화에만 있는 게 아니다. 문화관광부나 지방자치단체나 영화제 전문가나 더 이상 ‘재미도, 의미도 없는 그들만의 잔치판’은 그만 벌이자. 그게 다 누구 돈인데.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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