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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전 관람기/ 모네와 소통하니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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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전 관람기/ 모네와 소통하니 좋지 아니한가

입력
2007.07.06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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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려고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비극적인 사건은커녕, 단 한명의 인간조차 보이지 않는 단순한 풍경화인데 왜 가슴이 울컥했을까.

원색의 튤립 꽃밭이 펼쳐져 있고, 파란 하늘엔 구름이 펼쳐져 있고, 가운데 저 멀리 풍차가 서 있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네덜란드의 시골 풍경이요, 달력에서, 잡지에서 숱하게 본 익숙하기 짝이 없는 사진 속 구도인데 말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네덜란드의 튤립 밭> (1886)이다.

수련꽃 연작은 또 어떠한가. 같은 소재를, 그것도 제 집 마당에 파 놓은 연못에 띄워놓고 죽치고 이십 년 넘게 그려댔다. 나무나 꽃, 풍경...이런 것들은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나 그려보던 소재 아니었나?

문득 단체로 어린이 대공원 같은 데 끌려 가 버드나무며 고궁이며 원숭이들을 억지로 그려야 했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이 화가는 평생 동안 그런 의미 없는 풀꽃에 꽂혀 (사람은 거의 그리지도 않고) 소중한 세월을 보냈던 것일까?

아래 층 전시실의 수련 연작을 감상하며 품었던 질문은 위층의 유럽 여행에서 그린 풍경화들을 보면서 갑자기 풀렸다. 그의 작품은 어떤 이야기도, 인물도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100여년 전 그 순간을 목격하게 해 준다. 아니 느끼게 해준다. 이제 그림을 담은 액자는 마치 과거를 향한 창문처럼 열려 있고 우리가 보는 풍경은 그림이 아니라 모네가 본 순간의 홀로그램이 된다. 현재의 디카 사진보다 100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 더 진짜 같다.

정확도로 보면 카메라 렌즈가 잡은 사진이 최고일 텐데 왜 모네의 거친 붓질 속에 담긴 그림이 더 진짜 같을까? 그의 그림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화가의 망막에 맺힌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그의 두뇌, 그의 마음에 맺힌 순간의 세계, 인간의 감정과 인상이라는 붓의 터치를 따라갔기 때문이다.

모네의 그림은 ‘구경’이 아닌 ‘체험’의 놀라운 순간을 선사한다. 물감은 말랐지만 우린 모네가 보고 느꼈던 빛과 대기의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똑같이 맛볼 수 있다.

그건 흥분되는 경험이고 타임머신적인 신비로움을 지닌 감동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100년 전의 그림 속에서 마법처럼 되살아난, 내가 존재하지 않던 세상의 빛과 공기의 느낌. 일면식도 없는 이미 죽은 한 유럽인 화가가 마음 속으로 느낀 흥분을 고스란히 맛보는 소통의 순간은 초현실적이다. 죽은 자의 마음과 살아있는 자의 마음이 서로 와 닿으니 정말 좋지 아니한가. 가슴이 울렁거리고 눈물을 글썽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그림 앞에 서 있는 21세기의 한 영화 감독에게 말한다. ‘구경’하게 만들지 말고 ‘체험’하게 하세요. 그럼 당신의 영화도 끝없이 되살아 날 수 있을 것입니다.

◆빛의 화가, 모네= 9월 26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www.monet.kr (02)724-2900

정윤철ㆍ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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