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일/창비'깐수'의 인생·학문 열정 우리 현대사 굴곡까지
1996년 7월 4일 <신라ㆍ서역 교류사> (1992) 등의 저서로 문명교류에 관한 독보적 연구업적을 인정받는 학자였던 단국대 교수 무함마드 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당국은 그가 아랍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정수일(73)이라고 발표했다. 신라ㆍ서역>
정수일의 인생역정은 곧 한국 현대사의 곡절이다. 간도 이주 유민의 후손인 그는 베이징대 동방학부를 졸업하고 중국 국비장학생 1호로 이집트 카이로대에 유학했다.
중국 외교부의 엘리트로 5년간 근무하다, 조선족의 ‘환국파’와 ‘잔류파’ 논쟁에서 환국을 택해 북한으로 가 15년을 교수로 있었고, 다시 튀니지 필리핀 등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그의 담당 판사도 판결문에서 그를 “소설 같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 표현했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2004)는 투옥 4년간 그가 부인에게 쓴 서간집이다. 스스로의 존재 고백인 동시에,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학문 열정이다. “부(富)는 그쪽에서 다가오는 수도 있지만 지혜는 항상 이쪽에서 다가서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0.75평 독방을 자신의 학문인생을 중간결산하는 터전으로 삼았다. 소걸음으로>
이미 12종의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산스크리트어 등 2~3종의 언어를 더 배워야겠다며 공부하고, “시간을 무자비하게 혹사하며” 용수통을 뒤집어 책상 삼아 자신이 구상한 문명교류학에 관한 글을 썼다.
정수일이 그렇게 옥중에서 쓴 원고는 무려 2만5,000장. 프랑스어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이븐 바투타 여행기> 를 완역했고,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을 역주했으며, <씰크로드학> <고대문명교류사> 등의 역저를 출옥 후 잇달아 내놓았다. 문자 그대로 우보천리(牛步千里)다. 고대문명교류사> 씰크로드학> 왕오천축국전> 이븐>
하종오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