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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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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입력
2007.07.06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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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일/창비'깐수'의 인생·학문 열정 우리 현대사 굴곡까지

1996년 7월 4일 <신라ㆍ서역 교류사> (1992) 등의 저서로 문명교류에 관한 독보적 연구업적을 인정받는 학자였던 단국대 교수 무함마드 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당국은 그가 아랍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정수일(73)이라고 발표했다.

정수일의 인생역정은 곧 한국 현대사의 곡절이다. 간도 이주 유민의 후손인 그는 베이징대 동방학부를 졸업하고 중국 국비장학생 1호로 이집트 카이로대에 유학했다.

중국 외교부의 엘리트로 5년간 근무하다, 조선족의 ‘환국파’와 ‘잔류파’ 논쟁에서 환국을 택해 북한으로 가 15년을 교수로 있었고, 다시 튀니지 필리핀 등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그의 담당 판사도 판결문에서 그를 “소설 같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 표현했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2004)는 투옥 4년간 그가 부인에게 쓴 서간집이다. 스스로의 존재 고백인 동시에,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학문 열정이다. “부(富)는 그쪽에서 다가오는 수도 있지만 지혜는 항상 이쪽에서 다가서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0.75평 독방을 자신의 학문인생을 중간결산하는 터전으로 삼았다.

이미 12종의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산스크리트어 등 2~3종의 언어를 더 배워야겠다며 공부하고, “시간을 무자비하게 혹사하며” 용수통을 뒤집어 책상 삼아 자신이 구상한 문명교류학에 관한 글을 썼다.

정수일이 그렇게 옥중에서 쓴 원고는 무려 2만5,000장. 프랑스어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이븐 바투타 여행기> 를 완역했고,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을 역주했으며, <씰크로드학> <고대문명교류사> 등의 역저를 출옥 후 잇달아 내놓았다. 문자 그대로 우보천리(牛步千里)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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