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에서 작년에만 6명이 암으로 죽었습니다. 올 들어서도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이 잇따르고 있어 마을 전체가 뒤숭숭합니다.”
충남 서천군 LS니코동제련(옛 장항제련소)에 인접한 장항읍 장암리. 이 지역 주민들이 최근 “마을에서 암환자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며 국회와 충남 서천군 등에 진정서를 보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주민등록상 인구가 125세대 264명의 비교적 큰 마을로, 제련소와 인접한 45만여㎡의 들판에서 농사를 짓거나 근처 갯벌에서 조개를 캐 생활하는 농어촌이다.
3일 마을회관에서 만난 조모(74)씨는 “친구 2명이 올해 모두 암으로 죽었다. 나도 지금은 멀쩡하지만 어찌 될지 모르겠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한달 전 암 수술을 박모(74)씨도 “암으로 고생하다 떠난 사람들이 자꾸 떠오른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였다.
주민대책위원회가 마을 사람들의 암 병력을 자체 조사한 결과, 최근 10년간 암으로 사망한 사람만 40여명에 이른다. A(55)씨는 두 달 전 혀(舌)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으며, B(54)씨는 부부가 모두 암 진단을 받았다. 이들을 포함해 현재 암으로 투병 중인 주민은 12명이나 된다. 장암리와 생활권이 같은 인근 송림리 주민들도 잇달아 암 진단을 받았다.
박모(62)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서도 암이 많이 생기고 있어 동네 사람 모두가 건강진단을 신청하는 등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방훈규(51) 주민대책위원장은 “ 그 동안 암으로 매년 4,5명이 숨졌지만 주민들이 크게 의식을 하지 못했었다”며“하지만 조사 결과를 보고는 주민들이‘혹시 나도’라는 생각에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암환자가 급증하는 원인에 대해 인근 제련공장을 지목하고 있다. 공장에서 배출한 오염물질이 인체에 피해를 주고 토양을 오염시켜 이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먹은 주민들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추정이다.
실제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지난해 이 지역 논에서 수확한 벼의 중금속 잔류허용치를 조사한 결과, 카드뮴(Cd)이 허용기준치(0.2ppm)의 3.7배인 0.74ppm으로 나타나 군이 해당 논에서 생산된 벼 1,303㎏을 전량 수매해 폐기 처분했다. 한 주민은“이런 사실을 일찍 알았더라면 이곳에서 재배된 농작물을 먹지 않았을 것”이라며“이제 농작물을 외지에서 사다 먹어야 할 처지”라고 답답해 했다.
물론 제련소 측은 주민들의 이런 주장에 펄쩍 뛰고 있다.공장을 가동한 지 70년이 넘었고 1989년부터는 용광로 가동도 중단해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주민들이 이 일대에 폐자동차 잔재물 소각장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갑자기 암환자 발생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충남도는 긴급대책반을 구성해 실태 파악에 나섰다. 도는 서천군 보건소 직원들을 보내 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토양오염과 농산물에 대한 중금속 잔류검사도 실시할 방침이다.
서천=허택회 기자 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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