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한국바둑리그는 울산 디아채와 전남 대방노블랜드, 서울 신성건설과 경기 한게임이 벌인 두 경기 모두 3 대 0, 화끈한 완봉승으로 끝났다. 지난 3개월 동안 치러진 5라운드 20경기 가운데 벌써 여덟 번째 완봉승이다.
한국바둑리그가 팀당 5명씩 출전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은 올해부터. 지난 해, 팀당 4명씩 출전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나서부터 무승부가 속출한 게 결정적 이유였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는 달리 아슬아슬한 3 대 2 승부가 아니라 담백한 3 대 0 승부가 더 많이 나오자, 대회 관계자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먼저 가장 즐거운 사람은 대구 영남일보의 최규병 감독일 것이다. 영남일보는 그 동안 치른 다섯 경기 중에서 무려 세 차례나 완봉승을 거뒀으니 말이다. 김지석 홍민표 이영구 등 영남일보 완봉승의 주역들도 다연히 기분이 최고이리라.
그러나 반대로 이와 관련,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뜻밖에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경기가 3 대 0 혹은 3 대 1로 끝날 경우 잔여 경기를 치르지 않기로 한 규정 때문. 어차피 승부가 났는데 박진감이 떨어지는 나머지 경기를 구태여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취지에서 도입한 것이지만 예상 밖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바둑팬들의 볼멘 소리가 가장 크다. 바둑리그 경기는 국내 최대 규모이자 유일의 단체전으로 바둑TV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다. 그래서 매주 5일씩이나 저녁의 골든 타임에, 그것도 생방송으로 편성된다. 그런데 경기가 중간에 일찍 끝나는 바람에 예정대로 방송이 진행되지 못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 것.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성미 급한 시청자들로부터 짜증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두 주 연속 일요일 저녁에 바둑리그 경기가 방영되지 않자,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휴일 저녁 고대했던 볼거리를 잃은 열성 바둑팬들의 항의와 불만을 담은 댓글이 인터넷 바둑 사이트를 가득 채웠다.
선수들도 내심 불만이다. 사실 바둑리그가 단체전 형식을 띠고 있어 팀의 승리가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선수들에게는 대국료 수입도 중요하다.
한데 중간에 승부가 결정 나서 더 이상 대국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게 되니 예상보다 수입이 즐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그 동안 완봉승이 8차례 나왔으니 한 경기에 4명씩 무려 32명분 대국료 수입이 날아간 셈이다. 3 대 1 승부까지 감안하면 손실은 더 커진다.
더욱이 감독으로서는 팀의 승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강자들부터 출전시키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오더를 짜는 묘미도 없어질 뿐더러 하위 순번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출전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출전 기회가 편중되면서, 대국료 수입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것이다.
진 팀은 졌으니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이긴 팀 선수들은 더욱 사정이 딱하다. 영남일보의 경우 4장 손근기와 5장 허영호는 세 번 모두 오더에 올랐으나, 세 번 다 동료들의 선전에 박수만 치다가 돌아갔다. 내심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겠지만 축제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을 수밖에 없다.
방송 관계자들도 울상이다. 바둑리그 방영 시간은 오후 7~11시까지의 황금 시간대인데, 시합이 중간에 없어지는 바람에 말마따나 금쪽 같은 시간을 재방송 등으로 메워야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에 대비해 별도의 바둑리그 관련 땜질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본 방송보다는 못해 시청자들을 계속 붙들고 있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이미 결정된 원칙을 중간에 바꿀 수도 없는 일이어서 한 바둑TV 관계자는 “후기 리그에서는 가급적 박빙의 승부가 많이 나오게 해 달라고 고사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한국바둑리그는 지난 3개월간 총 14라운드 64경기 가운데 5라운드 20경기를 치러, 초반 ‘포석’ 단계를 끝내고 본격적인 ‘중반 전투’에 접어든 상태다. 현재까지는 치열한 각축 양상이다. 각 팀별 성적은 지난해 꼴찌였던 대구 영남일보가 파죽의 5연승으로 단독 선두를 달리고 신생팀 전남 대방노블랜드가 5패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나머지 팀들은 모두 3승 2패, 2승 3패.
이번 주 한국바둑리그는 전남 대방노블랜드와 서울 신성건설(4일 오후 7시부터), 경기 한게임과 대구 영남일보(6일 밤 9시부터)가 맞붙는다. 선두 영남일보의 연승 행진과 꼴찌 노블랜드의 연패 탈출 여부가 관심거리다.
박영철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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