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주요 예비주자들이 모였다. 도토리 키 재기를 해 온 주자들이지만 대통합에 성공하면 도토리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 만했다.
이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대통합의 정치적 의미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인식의 결여와 상황에 대한 억지 정당화 논리를 가리지 못했다. 이래 가지고서야 아직 한참 멀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등 한나라당 주자들의 높은 인기에 비해 범여권 예비주자들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극히 낮다.
5년 전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많은 사람들까지 등을 돌려버린 현실은 어디까지나 범여권 스스로의 책임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 대통합과 단일후보 선출에 기술적으로 성공한다고 해서 일이 다 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이번 모임에서 범여권 예비주자들은 정치공학적 수완에 대한 기대와 한나라당 집권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만 강하게 드러냈을 뿐 진정한 자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민주화 세력'과 '역사적 소명'을 운운하며 스스로의 문제를 가리려고 했다.
한나라당을 나온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뺀 나머지 범여권 주자들은 지난 10년 동안 권력 주변에서 민주화의 과실을 누려왔다. 어쩌면 '3당 통합'을 이유로 집권세력을 몰아세울 수 있었던 YS정권 시절부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 와서 '역사적 소명'을 운운하며, 스스로의 무능과 정책 실패의 당연한 귀결인 국민의 정치인식을 깎아 내리는 것은 참으로 뻔뻔하다.
인위적으로 설정된 소명의식에 국민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라면, 그 둔한 현실감각이 난치병 수준이다. 차라리 현실적 이해를 다투는 싸움인 만큼 어떻게든 이기고 싶다는 정치 욕구를 솔직히 드러내는 게 낫다.
"한 알의 밀알로 썩어 대통합의 밑거름이 되겠다"며 출마를 포기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앞서 "민주화 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달고 다닐 때가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정도의 원칙에만 충실했어도 이날 모임의 의미는 좀 더 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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