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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개혁, 쉼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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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개혁, 쉼표는 없다"

입력
2007.07.0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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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변화의 바람이 휘몰아친다. 지난해 7월 서남표 총장 부임 후 불어 닥친 개혁의 태풍이 캠퍼스를 뒤흔든다. 교수들 사이에 “몇 명쯤 잘릴 것”이라는 긴장이 감돌고, 한편에서는 “우리도 세계적 대학이 될 수 있다”고 꿈에 부풀어 있다. 내부 불만도 있지만 “20년 동안 변할 일이 1년새 이뤄졌다”고 입을 모은다.

“정년 보장 없다” 긴장

승진과 영년직(테뉴어) 제도의 변화는 교수들에게 먼저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달 중 열릴 인사위원회를 앞두고 각 학과들이 진행중인 테뉴어 심사 대상에는 부임한 지 4년밖에 안 된 새파랗게 젊은 교수도 있다. 다음 학기에 부임할 교수 중에는 임용과 동시에 테뉴어를 보장받은 이도 있다.

예전엔 정교수 승진 7년 뒤 테뉴어 신청자격이 주어졌지만 신규 교수들은 부임 후 8년 내 테뉴어를 받지 않으면 학교를 나가야 한다. ‘머리 희끗한 교수의 권위’의 상징이었던 테뉴어는 이제 ‘젊은 교수들의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다.

학과장들은 해외 전문가를 수소문해 “이 사람을 평가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기에 바쁘다. 교내, 국내 교외, 국외 전문가 12명의 평가서를 취합해야 한다. 냉정한 평가를 위해 평가서에는 “소송이 걸려도 비밀을 보장한다”고 인쇄돼 있고, 서 총장은 “친분 있는 사람한테 평가받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심사대상자는 자기평가서 수십쪽을 써내느라 밤을 샌다.

미래 비전 없으면 탈락

‘새로운 피’도 학교 분위기를 일신하고 있다. 5년 동안 300명을 새로 뽑아 교수 수를 700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인데, 삼성서울병원 의사가 공대 교수로 부임했고, 지난 1년새 채용된 29명 교수의 30%는 외국인이다. 35세가 넘으면 뽑지도 않는 추세다.

선발과정은 더 깐깐해졌다. 후보자를 불러 연구 세미나와 강의를 시키고, 이틀에 걸쳐 15~20명 교수들이 1대1로 면접을 하거나, 가능한 모든 교수들이 평가서를 써내는 학과도 있다. 생명과학과는 올들어 10여명의 후보자를 면접, 2명을 엄선해냈다.

하지만 고르고 고른 최종 후보 3명 중 1명은 서 총장의 손에서 다시 걸러진다. 서 총장은 일정에 따라 학교나 공항 등 장소와 시간을 안 가리고 최종 후보자들을 면접한다. 업적을 중시했던 과거 기준이라면 당연히 임용됐을 후보들이 “논문은 많은데 세계 최고를 향한 비전이 없다” “누구나 할만한 연구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물리학과장인 이순칠 교수는 “3명의 교수를 새로 뽑으려 심사했으나 1명은 총장 손을 통과할 자신이 없어 탈락시켰고, 2명이 총장 면접을 해 1명만 임용됐다”고 말했다.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도 4명의 최종 후보 중 1명만 건졌다.

“성공해야만 한다” 한목소리

채용이나 승진이 모두 어려워졌지만 교수 지원자 수는 오히려 늘고 있다. 화학과는 박사후 연구원(포스트 닥터) 1,2년차 이상에서 교수를 선발하던 개념을 바꿔 “박사과정생이라도 좋은 연구 아이디어가 있으면 뽑겠다”며 적극 지원을 유도, 올들어 40명이 지원해 곧 선발에 들어간다.

학과장인 김세훈 교수는 “학기당 두 세명이 지원하던 예년에 비하면 엄청 늘었고 야심있는 인재들도 많다”고 말했다.

서 총장의 불도저 같은 개혁 드라이브에 교수들 불만도 없지 않다. 한 교수는 “논문의 질만 강조하면 두뇌한국(BK21)의 논문 수 실적은 어떻게 채우느냐”고 현실론을 폈고 다른 교수는 “재정 확충 없이 교수만 쥐어짜면 다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변해야 한다는 대의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물리학과의 한 교수는 “KAIST가 세계적 대학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학교의 개혁과 발전은 성공할 것이다가 아니라 성공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 서남표 KAIST 총장"똑똑한 인재들 모아 놓고 세계 최고 못 만들면 죄악"

“얼마 전 새로 교수를 뽑는데 부임하자마자 정년을 보장키로 했습니다. 학과 교수들이 모두 ‘가장 어린 후배지만 실력이 있으니 테뉴어(정년보장)를 주고 데려와야 한다’는 겁니다. KAIST는 잘 될 겁니다. 이미 잘 되고 있습니다.”

서남표(71) KAIST 총장은 물갈이의 대가다.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장일 때 자신을 가르친 교수들을 “나가 주시라”며 절반을 갈았고, 미 국립과학재단(NSF) 부총재일 때는 ‘서남표’라면 이를 갈 정도로 조직을 뒤바꿨다. 직접 만나보면 그의 리더십이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 총장 부임 후 불만 어린 몇몇 교수들이 “다른 학교로 옮기겠다”고 했다. 서 총장은 “안 갔으면 좋겠지만 간대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교수 좀 나간다고 학교가 큰 일 난 것처럼 흔들리면 다른 교수들은 뭐가 되겠나?”

심층면접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키로 한 새 제도의 ‘객관성 시비’에 대해서도 서 총장의 답은 단순하다. “20년 뒤 성공할 사람 뽑으려는데 점수 2점이 중요치 않다. 내가 선생 오래 해 봐서 아는데, 채점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하루종일 교수 3명이 학생 1명 인터뷰하면, 결국 시험지만 없는 시험이다. 더 이상 어떻게 객관적일 수 있나?”

그는 “학부모 항의나 소송도 각오했다. 좋은 학생 뽑기 위해 감수할 일”이라고 말했다.

서 총장은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릴 인재 몇 명이 학교 전체를 바꿀 것으로 믿는다. “세상에 작곡가 많다. 그 중에 몇 명의 음악을 듣나? 손에 꼽을 정도다. 우리도 모차르트 한 두명쯤 있어야 한다. 똑똑한 인재가 있으면 따라잡으려는 사람들이 생기고,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아진다. 옆 교수가 아니라 역사와 경쟁하겠다는 사람이 필요하다.”

꿈이 큰 교수를 뽑아 일찌감치 테뉴어를 주겠다는 제도는 그래서 나왔다. 서 총장은 “나도 테뉴어 받기 전엔 불안했지만 15년 뒤 KAIST를 떠나 있을 수도 있는 사람이 중심이 돼선 안 된다”고 단언한다.

“일단 자신 있는 교수들부터 정년보장을 신청한다. 앞으로 테뉴어 받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테뉴어 받은 교수들이 곧 심사자인데, 일단 보장받고 나면 남한테는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나. 그래서 학교가 ‘되는’ 거다.”

서 총장은 국내외 어디에 있든 이메일로 업무를 본다. 메일 보내는 시각이 새벽 5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다. 그런데 “교수들 입에서 힘들다는 말 안 나오게 나도 수업을 해야겠다”고 한다. 아직도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이들을 향해 서 총장은 “10년 뒤 나와 함께 KAIST에 남을 사람이 누구인지 지켜보자”고 엄포를 놓는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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