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를 맞는 은행들의 태도가 비장하다. 화려한 외형 성장과 달리 안으로는 수익성 하락, 자금 이탈, 경쟁 가열 등으로 계속 곪아가고 있는 탓이다.
2일 하반기 각 은행의 영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은행장 월례 조회에서도 문구 하나하나에 이런 비장함이 여실히 묻어났다. 문제 의식이 같기에, 해법도 비슷했다. "내실로 돌파하자"는 것이다.
수신은 줄고, 수익성도 떨어지고
은행장들은 약속이나 한 듯 예금에서 투자로의 이동, 즉 '머니 무브(Money Move)'를 화두로 제시했다. 김종열 하나은행장은 "이제 시장의 흐름은 정기예ㆍ적금이 아니라 간접투자형 상품으로 옮겨져 있다"며 "머니 무브 현상으로 은행권 자금 조달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강권석 기업은행장도 "시중자금이 예상보다 빠르게 자본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등 머니 무브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요구불 및 저축예금 등 조달비용이 낮은 저(低)원가성 핵심예금이 줄어들면서 수신 기반이 휘청거리는 은행권 현실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자금조달 중 저원가성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14.3%에서 지난해 13.5%, 올 1분기 12.9%로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수익성 하락 우려도 컸다.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율(NIM)은 2005년 2.80%에서 지난해 4분기 2.57%로, 올 1분기 다시 2.46%로 낮아졌다.
최근 2~3년간 외형적인 수익(당기순이익)은 사상 최대치 행진을 해왔지만, 덩치가 커지고 LG카드 매각 이익 등 특수 요인에 힘입은 것일 뿐 수익을 낼 수 있는 체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신 BIS협약(바젤2) 시행 등 외부 환경 변화도 하반기 은행 경영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돌파구는 내실 강화
은행장들은 안팎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해법으로 금리 등 외형 경쟁이 아닌 내실 강화를 제시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일부 점포장은 여수신 금리 경쟁력을 더 높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며 "하지만 금리로만 경쟁하면 당장은 손쉽게 고객을 유치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은행의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경쟁보다는 고객 친화적인 영업으로 위기를 타개하자는 것이다. 신상훈 신한은행장도 "은행권의 수익성 하락이 증권사로의 자금 이탈 등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스스로 적정 수익성 관리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자통법 등 금융시장 변화에 대비한 움직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증권사 인수 또는 설립을 적극 검토할 시점에 이르렀다"며 "단순히 덩치 키우기나 구색 갖추기가 아니라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금융그룹화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정원 행장도 "해외 사업 확대, 증권업 진출 등 미래 성장 동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방면의 준비 작업을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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